[군산 '맛' 대첩] '순대 국밥' 단지 100년 역사 자랑(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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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 대첩] '순대 국밥' 단지 100년 역사 자랑(8)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3.09 11:35
  • 기사수정 2022-01-14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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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세느강변’… 1970년대 후반 복개공사로 먹자골목 탄생
원래 순댓국… 돼지머리‧ 내장‧ 살코기 등 우려낸 육수+밥 혼합 음식
중장년 주당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
공설시장 주변의 국밥단지./사진=군산시
공설시장 주변의 국밥단지./사진=군산시

 

전통시장의 핵심 도로는 구시장로다.

이 곳에서 동신영길로 가면 공설시장이 위치하고 구시장로에서 신금길로 접어들면 신영시장의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다.

신영시장과 공설시장을 끼고 있는 곳이 군산에서 보기 드물게 집단으로 형성된 신영동의 전통순대국밥 집단촌.

시민들 사이에는 세느강변으로 통하는 군산의 국밥집단 단지이다.

신영동 먹자골목은 1918년 공설시장이 들어서면서 시장터에 있는 옛 장터를 연상케 하는 음식군락지를 이뤘다.

1970년대 중‧ 후반 실개천을 복개하면서 샛강이 주차장으로 변하면서 생긴 곳이다.

물론 순댓국밥집은 비교적 큰 장(場)이 서는 곳이라면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라 할 것 없이 들어서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시장에 일하던 사람이나 장을 보러 온 사람이 몰리는 곳이라면 값싸게 먹을 수 있는 먹자골목은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5일장이 형성됐던 곳이든, 상설시장이 만들어졌던 곳이든 자연스런 현상 중 하나가 먹자골목의 시작이자 역사가 아니었을까.

◆돼지국밥이란

돼지국밥은 원래 ‘순댓국’이라 불렸다.

군산지역에서 돼지머리와 내장, 살코기 등을 우려낸 육수에 밥을 푸고(넣고) 간을 해서 먹는 음식이 돼지국밥이다.

이곳에서 만든 돼지국밥은 돼지머리와 내장을 온 종일 삶아낸 국물에 돼지의 다양한 부위(순대, 귓불, 막창, 편육)와 부추, 다진 마늘, 고춧가루, 들깨가루 등의 양념을 해서 뚝배기애 다시 끓여내 만들어진 음식이다.

추억의 세느강변의 돼지국밥의 특징은 푸짐하다는 것이다.

밑반찬으로 배추김치와 깍두기 이외에 손님이 보는 앞에서 싱싱한 부추로 겉절이 무쳐주는 것도 여기만의 방법이다.

손님이 요구하면 순대, 귓불, 막창, 편육 등을 듬뿍 넣어줄 뿐만 아니라 국물이 진하고 얼큰해서 해장국으로 인기가 좋다.

◆국내 최고(最古)의 돼지국밥 집단촌 탄생… 세느강변의 추억

군산의 돼지국밥은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이 곳의 돼지국밥 유래는 1918년 일제강점기에 개장한 구시장과 웅기전 사이를 흐르는 ‘샛강’ 주변에서 음식집 4~5개가 영업을 하면서 시작됐다 한다.

이 시장은 해방 후에도 강경, 부여, 대천, 서천, 장항 등 충남권 일부와 김제, 부안 등 도내 서부권 주민들도 이용하는 큰 시장이었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는 충청도 안면도와 부안의 변산‧ 격포 등에서 배로 실어오는 질 좋은 화목(火木)을 한 평 기준으로 쌓아 놓고 손님에게 팔았는데 장의 규모가 커서 산탄조합이라는 조합이 결성될 정도였단다.

또 한 곳의 나무장(場)은 현재의 구시장 순댓국 골목 앞 나무장(場)이었다.

이 곳 주변에는 국밥집이 즐비했고 국밥집 앞은 큰 공터였다.

화목은 오늘날의 도시가스와 연탄불 세대에게는 잊혀 진 단어겠지만 그야말로 먹고사는 문제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재료였다.

이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돼지국밥 원조논란도 존재한다.

부산과 경상도에서는 돼지국밥을 즐겨 먹는다.

구포시장은 물론 주변거리에서도 돼지국밥 전문 식당 간판이 널려 있다.

어떤 이들은 한국전쟁 피난 시절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부산이 원조라는 주장을 펴는 이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군산의 경우 1918년 이후 돼지국밥이 존재했는데 다른 지역에서 원조를 얘기하는 것은 옳은 주장은 아닌 듯하다.

이곳의 샛강은 째보선창(현재 죽성포구)으로 유입되는 금강의 지류 중 하나다.

샛강 주변은 1970년대까지 웅기전 골목, 순댓국집 골목 등으로 불리다가 1970년대 후반 큰 변화를 맞았다.

이곳의 샛강이 주차장으로 변하자 아련한 추억을 잊지 못한 사람들이 프랑스의 ‘센(Seine)강’에 빗대 ‘추억의 세느 강변’으로 부르기 시작,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 웅기전 근처에는 째보선창으로 흐르는 샛강이 있었는데 오늘날 동남아 지역의 집들처럼 갯벌에 나무기둥을 막아 지는 집들이 아슬아슬하게 빼곡하게 서 있었단다.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뱅어가 잡힐 정도로 물이 맑았을 뿐 아니라 많은 어선들도 떠 다녀 이곳을 운치 있게 ‘세느강변’이라고 불렀다는 것이 이곳의 명칭유래다.

이곳은 1970년대 중후반 복개공사와 함께 주차장으로 변하면서 국밥집들이 너덜너덜하게 붙어 있다가 최근 먹자골목 특화거리 조성사업이 마무리돼 오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는 2012년 6월부터 추진한 신영동 목자골목 특화거리에 2013년 11월말 마무리했다. 간판정비와 공작물 설치, 공동작업장 신축 등을 마무리해 현대화된 집단단지다.

이곳에서 들어와 영업 중인 국밥집은 J국밥집 등 10여 곳이다. 한때 30~ 40곳에 달할 정도로 성업 중이었다.

이 단지에는 엄마가 딸에게 물려 준 경우도 있고, 시어머니로부터 가업을 이어받는 며느리도 있다.

물론 자신이 독자적으로 이 음식점을 시작한 경우도 있지만 이곳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영업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먹자골목 특화거리 조성이후 부모들이나 오랫동안 운영하던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곳의 식당들은 대부분 2~ 3평의 식당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식당에서 약간의 조리할 공간을 빼면 식탁이 3개 밖에 없는 아주 작은 식당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뤄졌다.

주당(酒黨)들은 왜 세느강변을 잊지 못할까.

고기와 양념을 아끼지 않고 펴주고 손님 한 사람만 가도 즉석에서 반찬을 만들어 주는 정성에다 부족하다 싶으면 덤으로 반찬을 덤으로 기꺼이 내주는 이곳만의 정 때문일 것이다.

국밥을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버무려 주는 싱싱한 부추 겉절이는 입맛을 돋아 주고 국물은 전날 먹은 술까지 해장용으로 작용, 애호가들은 어김없이 이곳을 찾곤 한다.

군산의 40대 이상의 술꾼들이라면 맛과 군산만의 정(情)을 잊지 못해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최근 들어선 군산을 방문하는 많은 외지관광객들에게 입소문이 나 찾은 이들이 늘고 있다는 귀띔이다. 

이 국밥단지는 최근 계속되는 코로나 19여파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격고 있어 아쉬움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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