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맛' 대첩] 아련한 추억 깃든 군산의 전기구이 통닭(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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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 대첩] 아련한 추억 깃든 군산의 전기구이 통닭(21C)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6.02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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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균홍‧ 양근옥 사장 부부 26년째 영업… 원형 유지한 ‘군산의 전설’
손 사장 50년 동안 닭요리와 인연… 닭요리의 살아 있는 ‘박물관’
사실상 우리나라 치킨 신흥 종주국 우뚝

 

우리의 닭요리는 전통적인 측면에서 비교적 단순했다. 삼계탕과 백숙 등과 같은 요리법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닭요리는 10여 가지를 넘을 뿐 아니라 이를 응용한 요리비법을 갖춘 전국구급 프랜차이즈들도 엄청나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치킨왕국이라 할 정도로 엄청난 업체들이 각종 양념통닭들을 요리해낸다.

이른바 ‘치킨 전쟁’의 신흥 종주국으로 이미 부상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식 치킨(간장, 후라이드, 양념)은 1980년대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대중화됐다.

우리나라에서 치킨이 쉽게 대중화한 것은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시절 상대적으로 재료를 구하기 쉬웠던 닭고기가 일찍 정착된데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에 통닭이 등장한 건 언제쯤일까.

군산에는 언제 전파됐을까.

통닭은 본래 조리되지 않은 닭 자체를 뜻했지만 이젠 누구나 그러하듯 닭 한 마리를 튀겨낸 것을 뜻한다.

통닭과 튀긴 닭을 서로 구별해야 한다면 튀김통닭이 맞는 말이겠지만 이제 통닭은 튀김통닭을 말하고 생닭은 생통닭을 말하게 됐다.

이 통닭의 시작은 서울의 명동영양센터를 원조로 보는 듯하다.

명동영양센터는 서울에선 매우 유명했던 곳으로 1961년 영업을 시작한 곳이다. 1990년대 들어서 이곳을 가본 사람들은 엄청났지만 이제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요리가 되어서인지 그 정도로 유명세를 타는 것 같지 않다는 게 그곳사람들의 일반적인 평이다.

 

전기구이통닭의 탄생

1960년대 서울 명동에 전기구이 통닭을 파는 영양센터본점이 문을 열었다. 치킨공화국 대한민국의 출범 신호탄이었다.

이전까지 우리민족은 닭을 찌거나 삶아 먹었을 뿐 굽거나 튀기는 문화는 거의 없었다. 그 배경에는 육계산업이 1960년 시작되고 닭고기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희한한 방식이 일반에 선뵀다. 전기구이통닭이 그 중 하나다.

전기구이통닭은 등장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신동아 1965년 9월호는 ‘전기구이 통닭, 군침부터 삼키고 한집이 문을 열었을 때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이 초만원이라 다른 집엘 갔다.

역시 만원이다’라는 기사가 그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 내용이었다 할 수 있다.

경쟁업체가 급증하자 영양센터본점 창업자가 전기구이통닭을 만드는 기계를 영양보존조리기라 명명하고 1962년 실용신안등록을 신청했지만 반려된다.

수동을 자동으로 만들었을 뿐 과거 통닭조리기와 별 차이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다시 연구해서 1963년 영양보존조리기를 실용신안등록 1754호로 등록했지만 전기구이 통닭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해표에서 식용유를 출시하면서 가마솥에 닭을 튀겨 먹는 가마솥 통닭이 등장했다.

방식은 달랐지만 닭을 튀겨먹는 문화는 1950년대부터 서울에도 있기는 했다.

당시 중국집들은 야유회나 소풍철 등이면 닭을 여덟 조각으로 조각내 밀가루를 묻혀 돼지기름이나 쇼트닝(동물성 지방)에 튀겨낸 ‘싸박이(八鷄)’를 팔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가마솥통닭이 원조를 자신할 처지에 있는 것은 아니다.

# 나운동 소재 ‘신토불이’… 거의 사라진 ‘전기구이 방식’만 고집

전기구이통닭요리는 양념치킨의 대유행으로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지만 군산만 그렇지 않았다.

1980년대에 극장가에 등장한 서울통닭이 군산의 원조격이었지만 지금은 일부 만 기억하는 곳이 됐다.

하지만 이곳을 롤 모델로 닭에 정통한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와 관심을 보였는데 그 주인공이 손균홍(70)‧ 양근옥(군산시새마을부녀회장) 사장부부다.

특히 서울에서 생활하던 손 사장은 젊은 시절 20여년을 흑석동시장과 상도동 영도시장 등에 생닭을 납품하면서 육계사업에 대한 눈을 떴고 집안사정 때문에 낙향한다.

그 때가 1994년 11월.

닭 요리에 깊은 관심을 보인 그는 전기구이 통닭요리로 유명한 서울통닭에 들러 수시로 맛을 보면서 3~4개월간 가게를 탐문하던 끝에 지금의 나운동소재 전기구이통닭집 신토불이를 개업했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손 사장부부는 갖가지 양념을 써서 닭을 요리했고 10년을 고생하던 끝에 애주가와 주변 주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 요리들은 튀김똥집과 별미양념똥집, 후라이드 치킨, 양념치킨, 전기구이통닭 등이다.

초기에는 전기구이기구와 닭의 크기 문제로 고생하기도 했지만 오랜 닭도‧소매업의 경험을 통해 적합한 크기를 구해 주변 주민들은 물론이고 외지인들까지 몰려들고 있을 정도다.

전국 브랜드 프랜차이즈 전문점들이 독식을 하고 있는 시대에 중소도시 개인치킨집의 성공 비결은 손 사장부부의 끊임없는 연구와 성실함 등에 기인한다는 말밖에. 요즘은 딸들까지 이 사업에 뛰어들어 2세경영을 준비하고 있단다.

한편 군산에서 유행을 탔던 바비큐 통닭 요리는 소리 소문도 없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그중 빈해원 근처에서 영업하며 군산시민들의 입맛을 책임졌던 털보바베큐는 치킨 전쟁 중에 유행에 밀려 영업을 접어 아쉬움만 가득하다.

시원한 맥주와 바베큐 통닭을 먹었던 추억들을 떠올리는 그런 계절이 부쩍 다가오고 있다.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통닭

우리가 아는 후라이드 치킨이라고 부르는 튀김가루를 발라 튀긴 튀김통닭은 언제부터 지금의 모습을 보였을까.

그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글로벌 업체 KFC가 아닐까. 이 회사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은 1984년. 이때 상호는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었고 그 약자인 KFC가 지금 그 회사의 공식 이름이 되었다.

글로벌 KFC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이 회사는 1930년에 영업을 시작했고 1839년 양념 11가지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회사의 역사도 역사지만 그들만의 양념도 그렇게 오래된 역사라니 놀라울 뿐이다.

반면 우리나라 토종 프랜차이즈 페리카나 치킨을 시작으로 일반 대중이 양념통닭을 맛보게 된 것은 1982년. 하지만 페리카나 브랜드는 1982년 탄생했지만 상표등록은 2년 후인 1984년에 마무리 본격적인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도 초기 치킨 프랜차이즈로 꼽히는 맥시칸 치킨은 1985년, 처갓집양념치킨은 1988년에 문을 열어 그 후예들이 등장하기 전 전국적인 경쟁을 해왔다.

KFC의 국내 상륙은 1984년이지만 세계적인 측면에서 그 역사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 치킨시장 ‘총성 없는 전쟁 중’

현재 국내 치킨 시장규모는 연 4~6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숫자는 25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파닭과 불닭, 간장소스 또는 마늘 소스치킨 등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3만여 개를 훌쩍 넘은 상태고 동네상권에 있는 이름 없는 가게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엄청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치킨시장의 경쟁은 그야말로 혹독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더 저렴한 가격, 더 특이한 맛을 찾아 소비자들의 입은 즐겁고 반면 업주들은 하루하루가 전쟁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하겠다.

각종 스프츠중계가 있을 때면 너나없이 치킨집으로 배달주문을 하는 것은 물론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민적인 관심사가 있는 큰 경기가 열리 때면 치킨집들은 그야 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대구는 이런 전국적인 흐름을 간파하고 이미 치맥축제를 전국적인 규모로 열고 있을 정도니 말해 뭐할까. 무슨 치킨을 고를까가 흔한 뜨거운 여름날의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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