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맛' 대첩] '美 cook'사람~' 하면 떠오르는 음식…햄버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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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 대첩] '美 cook'사람~' 하면 떠오르는 음식…햄버거(12)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3.26 16:56
  • 기사수정 2022-01-14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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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집에서 ‘수제 햄버거’ 판매… 미군부대 근무자들로부터 전파
롯데리아 1호점 소공점 첫 등장 … 군산비행장· 옛 시청 인근 등서 확산
햄버거 등장 이후 피자, 핫도그 등 서양음식 대표 주자 ‘신세대 인기’
나운동 비행장정문 부대찌개 햄버거.
나운동 비행장정문 부대찌개 햄버거.

 

군산은 항구도시여서 외국 또는 외래문명을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통로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군산항은 1899년 개항한 이래 전북의 외래문명을 받아들이는 곳으로써 뿐 아니라 서해안 중심권의 경제 핵심창구였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는 화교와 일본인들은 물론 서양선교사들까지 들어왔고, 해방 후에는 미군 주둔과 북한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1950년대 한국전쟁 후 미군비행장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각종 미군용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흐름에 평화동의 양키시장이 생겨났고 미군의 발길이 잦은 영화동 주변은 미(美)군용품들의 천국이었다 할 수 있다. 이렇게 들어온 물품 중 대표적인 것이 그들의 음식이었다.

이런 음식들로는 햄버거와 피자, 각종 외산 양주 등이 주류를 이뤘다.

우리에게 생소한 음식이었던 햄버거는 엉뚱하게 미군비행장 인근과 영화동 부근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특식이자 별미였다.

입맛면에서 군산은 이미 글로벌적인 취향을 갖게 됐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 지역은 1980년대 미군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어서 햄버거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이 시기는 1980년 이전과 달리 우리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기에 오른 시점이기도 하지만 외식문화가 싹을 틔울 때였다.

1980년대부터 우리 경제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였고 대도시에서 중소도시로 소비흐름의 변화가 눈에 띨 정도였다.

다시 말해 미군부대에서 나온 물건들을 단순 판매하던 시기와 달리 이를 재가공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즉 군산의 소비 대전환기였다.

◇ 햄버거의 유래

햄버거는 쇠고기를 갈아 납작하게 만든 패티를 그릴이나 직화로 구워 여러 채소와 함께 빵 사이에 끼워 먹는 샌드위치의 일종으로 미국 대표 음식 중 하나다.

햄버거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진 기록이 없으며 오늘날의 형태의 햄버거를 먹기 시작한 것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880년 이후로 추정된다.

취향에 따라 양상추, 토마토, 양파, 치즈, 피클 등을 빵 사이에 함께 끼워 넣고 토마토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 등의 소스를 바르기도 한다.

탄산음료나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이다.

햄버거는 독일의 함부르크(Hamburg)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 도시이름 뒤에 ‘-er’을 붙인 햄버거는 ‘함부르크에서 온 사람이나 물건’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물론 독일어 발음과 다르지만 이를 영어로 차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명칭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햄버거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그 시작은 간 고기를 먹었던 것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이 고기를 갈아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유추하건대 인류의 역사 초기부터 인간은 고기를 다지거나 갈아 먹을 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 오늘날 햄버거의 탄생

13세기 몽골족이 간 쇠고기 ‘패티’를 전투식량처럼 이용했던 것이 햄버거의 원형이었다.

몽골족이 이 시기에 러시아를 침공할 때 알려졌던 이 패티를 러시아인들은 타르타르 스테이크라 불렀다.

이후 러시인들이 독일의 함부르크 지역과 무역을 하게 되면서 타르타르 스테이크가 소개됐는데 함부르크 지역에서 이것을 변형시켜 만든 것이 오늘날 햄버거의 직접적인 모델이 된 함부르크 스테이크(햄버거 스테이크)다.

이후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가 시작될 때 이 함부르크 스테이크가 미국 전역으로 전파됐고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세계만물박물관에서 공식적으로 햄버거가 등장했다.

1921년 제이 월터 앤더슨이 최초로 햄버거 가게를 열면서 미국을 넘어 세계인의 음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됐다.

◇ 군산과 국내 햄버거 등장

햄버거는 미군부대 내 판매시설이나 부대 식당에서 이미 일반화됐을 것이고 미군비행장에서 일한 군속과 이곳을 오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손을 거쳐 서서히 우리 주변으로 다가왔다.

아마 처음으로 등장한 곳은 미군비행장과 그 주변에서 출발했을 것이고 미군들이 많이 등장한 영화동 주변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과거 옛 시청공직자들도 특이한 음식을 먹었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을 보면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에 등장한 1979년 10월 햄버거 전문점인 롯데백화점 1층의 롯데리아 1호점(소공점)보다 군산사람들은 햄버거의 맛을 먼저 봤을 것은 분명하다.

미군비행장과 오랜 관련이 있었던 한 인사는 군산의 햄버거 유입에 대한 정설적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 중‧ 후반 미군비행장 정문에서 공식적으로 햄버거를 판매했단다.

실제 이 시기에 비행장을 다니고 있던 일부 인사들이 미군의 물자를 접하면서 비행장 정문 인근에 가게를 열어 처음에는 패티를 활용한 ‘미국+ 한국형’ 햄버거가 등장한 것이다.

이 때까지도 군산에서 선보인 햄버거는 미국식에 매우 근접했다는 게 군산비행장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의 전언이다.

그러다가 수년 후 새롭게 소시지와 햄 등을 넣어 부대찌개를 만들어 팔았다고. 물론 미군부대와 관련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 이미 초기형 부대찌개를 만들어 먹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부대찌개를 만든 음식점 주인들이 비행장 주변에 문을 열고 햄버거를 만들어 판매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물론 군산사람들 중 미군비행장 군무원과 군속, 근로자 등은 미군부대가 들어온 직후부터 햄버거의 맛을 일찌감치 봤을 것이다.

이곳과 인연이 있었던 50대의 L씨는 미군비행장에서 일하던 부모님 때문에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햄버거와 피자 등을 먹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이 시기에 영화동 주변에서 이런 흐름에 눈을 뜬 한 인사가 햄버거 집을 열어 팔면서 군산 도심권의 일반인들도 이 맛을 하나 둘씩 경험했다는 게 옛 군산시청에 근무했던 공직자들의 증언이다.

가장 먼저 햄버거를 취급한 곳은 아마도 나운동소재 한화생명빌딩(옛 대한생명빌딩) 뒤편에 영업 중인 비행장정문부대찌개집이 아닐까 싶다.

이곳의 남자 사장은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로 미군의 주된 음식이었던 햄버거 원료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점을 살려 미군비행장 정문 인근에서 가게를 열고 햄버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 때가 1984년이었다.

물론 얼마 후 튀김 닭과 부대찌개 등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성업을 이뤘단다.

이곳의 사장님과 초등학교 친구였던 김모(73)씨는 이 때 맛보았던 햄버거를 평생 잊지 못한다면서 그 시절 자녀들을 위해 이곳까지 직접 와서, 햄버거를 살 정도로 즐겨먹었다고 술회했다.

이곳에서 영업을 하다가 약 10년 전에 지금의 나운동 가게로 이전, 오늘에 이르고 있고 여사장에 이어 막내딸이 2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햄버거 이외에도 군산에서 진출한 프랜차이즈점들의 햄버거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 기타 … 핫도그와 피자 등의 등장

핫도그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다.

핫도그의 역사는 독일에서 출발했다고 하며 핫도그의 정식 명칭은 ‘프랑크푸르트’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프랑크푸르트(Frankfurt)라는 핫도그가 미국에 등장한 것은 1860년대다.

이때 미국인들은 이것을 ‘다크스훈트(몸통이 길고 다리가 짧은 개 이름에서 따온 것) 소시지’라고 불렀다.

이 시기 야구장에서 빵 사이에 다크스훈트 소시지를 따뜻하게 해서 얹어 먹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1906년 어느 날 ‘태드 드래곤’이라는 신문 만화가가 야구장에 갔다가 이 소시지를 먹는 것을 보고 만화에 담을 아이디어를 얻었다.

또 다른 유력 설 중 하나는 아라비아 상인들의 활동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중국이나 중세의 유럽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가 사업화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었던 만큼 프랜차이즈의 본류는 미국 프랜차이즈의 역사라고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근대적인 프랜차이즈의 기원은 미국 남북전쟁(1850년) 당시 ‘SINGER SEWING MACHINE’사가 재봉기를 판매하기 위해 충성스런 판매상 시스템을 조직한데서 비롯했다.

1950년 밀크 세이크 기계 판매원 레이 록(RAY KROC)이란 사람이 맥도날드 형제에 의해 운영되던 캘리포니아 세베르다니노의 한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을 프랜차이즈할 수 있는 권리를 사서 영업했던 것이 사실상 오늘날 프랜차이즈시대를 열었다 할 수 있다.

한편 국내는 1979년 10월 햄버거 전문점인 롯데리아(소공점)가 가맹점 형태로 시작한 것이 국내 프랜차이즈의 효시다. 롯데리아의 성공을 보고 1980년대 초반 프랜차이즈 시장은 외국 패스트푸드 브랜드들이 주도했다.

# 피자의 유래

피자는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언어로 고대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파이(pie)’라는 의미의 피체아(picea)에서 파생된 말이다.

피체아는 로마인들이 먹던 플라첸타라고 불리던 빵이 까맣게 그을린 아랫부분 혹은 그 빵 자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 피체아가 ‘piza’를 거쳐 오늘날 피자로 굳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차렐라 치즈가 피자에 처음 사용된 것은 공식적으론 1889년부터다. 그 해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2세와 마르게리타 왕비가 나폴리를 방문했다.

이 때 나폴리의 피자집 브란디 주인인 라파엘레 에스포시토는 국왕 부부를 위한 만찬에 올릴 피자를 개발하라는 명을 받았다.

왕비는 에스포시토가 만든 여러 가지 피자 중에서 토마토 소스와 모차렐라 치즈, 바질을 얹은 피자를 좋아했다.

이것이 피자 마르게리타다. 이런 배경에도 이탈리아 남부 일부 지역에서만 먹었던 매우 한정된 지역 음식이었다.

피자가 이탈리아에서 대중화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덕분이었다 할 수 있다.

이태리 나폴리와 시칠리아 등 남부사람들의 미국 이민과 함께 피자의 맛이 미국에 본격 전파됐다. 이후 피자 맛에 푹 빠지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군병사들로부터였다.

세계대전 후 이 피자 맛이 미국에 알려지면서 이태리를 방문한 미국인 관광객들의 단골 음식이 바로 피자였다.

이들의 입맛에 맞춰 이태리 전역으로 퍼지면서 오늘날 대표적인 패스트푸드로 자리 잡았다.

한편 군산의 피자집은 국내 어느 곳의 흐름과 유사하다. 다만 수송동의 퓨전레스토랑 가내수공업의 고르곤 졸라 피자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군산의 피자 업계는 미군비행장 내에서 판매하는 대형피자에서부터 전국의 많은 프랜차이즈 영업점들의 피자들 간 치열한 맛 경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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