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맛' 대첩] 한 시대를 풍미한 '로스'의 군산 전설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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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 대첩] 한 시대를 풍미한 '로스'의 군산 전설들(22)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6.08 10:41
  • 기사수정 2022-01-14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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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풍식당이 원조격 …대명로스, 남도로스, 소성로스, 서수로스 정육점 등
군산육류문화의 전성기 연 ‘원풍-대명(소성)로스 시대’ 지금도 회자
등심, 갈비, 삼겹살, 불고기 등 국민음식 넘어 외국인까지 맛 사로잡아
80~90년대 군산에서 로스로 인기를 얻었던 원풍식로스. 지금도 간판에 '로스'란 단어가 들어가 정겹다.
80~90년대 군산에서 로스로 인기를 얻었던 원풍식로스. 지금도 간판에 '로스'란 단어가 들어가 정겹다.

 

1970년대 말에서부터 낯선 ‘로스’말이 우리 주변에 다가왔다.

로스의 일반적인 말은 영어 ‘로스트(roast)’에서 온 단어인데 고기 따위를 불에 구워 익힘을 뜻하는 던어다.

이 단어가 있기 전에도 우리 조상들은 구운 고기를 먹었는데 어느 시기부턴가 대부분 로스(?)란 말로 대체됐다.

구운고기는 사실상 로스란 말과 같은 단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근대 육류구이 역사

서울소재 모 대학 논문에 쓴 한 연구가가 정리한  ‘근대 100년간 한국 육류구이 문화의 변화’를 시대별 특징으로 나눠 정리해보고자 한다.

물론 육류를 먹는 방식이 우리에게도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이 자료를 준용한 것은 어떤 의미에선 유의미한 내용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불고기’란 단어가 표제어로 제시된 첫 사진은 1950년 ‘큰사전’이다.

이 사전에서는 불고기의 뜻이 ‘숯불 옆에서 직접 구워가면서 먹는 짐승의 고기’로 기록되어 너비아니의 뜻인 ‘저미어 양념하여 구운 쇠고기’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1958년 사전부터 이후 너비아니와 불고기가 공존을 하다가 1968년 사전에는 반대로 너비아니가 사라지고 불고기만 존재했다.

그리고 1977년 사전에 너비아니가 재등장하고 현재까지 너비아니와 불고기가 공존하고 있다.

70년의 세월동안 편찬된 총17권의 사전에서 너비아니는 그 의미에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불고기는 시대에 따라 ‘구워먹는 짐승의 고기’부터 너비아니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현재까지 조리서에서 발견된 최초의 ‘불고기’라는 단어의 등장은 1958년 방신영의 고등요리실습에 표준어로는 너비아니라고 하든지 또는 고기구이라고 표현했다.

대표적인 한국의 육류구이는 너비아니, 갈비구이, 제육구이였다.

17~18세기에는 갈비를 굽다가 찬물에 담궜다가 즉시 건져서 굽기를 세 번 반복하여 구운 후 양념하여 굽는 방법이었단다.

18세기 후반~19세기 중엽에는 양념한 갈비를 굽는 방법으로 변화하였고 19세기 중엽에는 양념한 갈비를 기름에 지져서 놓았다가 먹을 때 굽는 방법과 갈비를 기름에 잠깐 튀겨낸 후 양념하여 굽는 방법이 추가됐다는 것.

각 시대의 육류구이의 종류와 대중화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흐름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육류구이 문화형성기

일제강점기 때 명월관 등 요리점의 음식은 상업적 이익을 위해 점차 변모하고 왜곡됐는데 육류구이를 접할 수 있는 대중음식점도 많아졌다.

현재까지 발견한 불고기라는 용어를 최초로 볼 수 있는 문헌은 1922년 4월1일 개벽 제22호에 실린 현진건의 소설 ‘타락자’이다.

여기에서의 불고기 덩이는 너비아니 류의 음식이라기보다는 ‘구운 고기덩어리’의 의미로 보인다.

이밖에 문헌에 발견되는 불고기라는 단어는 너비아니류의 한국음식(1926년), 국밥집의 불고기(1927년), 평양의 명물 석쇠 불고기(1935, 1939년), 경상도 술안주 불고기(1936년) 등이다.

다소 의미에는 차이가 있지만 서울, 평양 뿐 아니라 전라도,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통용됐다.

일제강점기에는 너비아니, 군고기, 구운고기, 소육, 야키니쿠가 불고기와 혼용해서 사용됐다.

이 시기에는 쇠고기에 비해 돼지고기는 부위가 덜 분화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조리법도 다양하지 않았다.

저육과 제육이라는 단어가 모두 사용되었으며 제육구이가 가장 대표적인 조리법이었다.

# 육류구이 문화발전기(1945~1975년)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는 시기에 우리나라 육류수급은 매우 열악했으며 도살을 금지하는 정부의 시책에도 불구 고기 값은 계속 폭등, 암매매까지 이뤄졌다.

우육대신 돈육을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양돈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한일관(1939년 창업), 우래옥(1946년 창업), 옥돌집(1948년 창업), 진고개(1963년 창업) 등 불고기 전문점이 형성되어 불고기의 대중화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우리나라 육절기 산업은 1960년대 초반 일본의 육절기 도입으로 시작, 초기에는 일본 제품을 모방하다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정식으로 수입돼 본격적으로 발전됐다.

우리나라 최초 불고기 판 특허는 1962년 불고기 석쇠라는 명칭으로 나왔고 그 다음해 불고기 판 천개가 태국에 수출된 것 등을 고려할 때 최초 특허 이전에도 불판이 많이 사용됐던 것으로 보여 진다.

전통적으로 양념구이가 주류였던 우리의 육류구이 문화에서 생고기를 구워먹는 로스구이가 1970년대 들어서면서 매우 핫한 음식이었다.

양념하지 않은 생고기구이에 우리의 음식문화가 익숙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로스구이는 1973년에 표준말 등심구이로 용어가 바뀌었다.

# 육류구이 문화 전성기(1975~ 2000년대)

107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의 육류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소고기에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1976년 9월 외국산 쇠고기가 첫 수입됐다.

1960~1970년대에는 석쇠불고기와 육수불고기가 공존했지만 1980년대 들어서는 육수불고기가 우세해지면서 불고기의 대명사가 됐다.

이 시기에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입지를 굳혔지만 90년대 초반부터는 불고기가 뒤로 처지면서 생등심, 생갈비 등의 생고기를 더 선호하는 경향으로 변했다.

그 이유는 식자재 그대로의 맛을 즐기려는 고객들의 입맛 변화와 함께 불고기의 질적 하락으로 볼 수 있다.

실제 1990년대 들어서면서 불고기 자체는 쇠퇴가 시작됐지만 불고기의 후광을 입은 응용상품으로 불고기 버거가 개발되고 일본식 불고기가 유행하기도 했다.

결국 근본으로 돌아가 불고기의 뿌리인 너비아니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기게 됐다.

주물럭도 한동안 유행을 선도했고 최근엔 어느 정도로 자리잡았다.

1970년대 중반까지도 삼겹살은 구이보다는 편육, 조림, 찜으로 많이 이용됐는데 70년대 후반부터 삼겹살 구이가 전국을 강타했다.

특히 삼겹살 구이는 소주 안주로 인기를 모았고 IMF로 불경기가 이어지자 ‘IMF 삼겹살’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더욱 대중화됐다.

삼겹살에 소주는 한국문화의 하나로 인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육류음식과 마찬가지로 등심과 갈비, 불고기, 삼겹살 등이 대중화를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로 변했다.

 

군산의 육류 음식점 대표주자… 원풍식당과 그 후예들

우리나라의 육류섭취가 본격화 된 것은 1970년대 후반 또는 1980년대 초반이라 할 수 있는데 본격 자리를 잡았던 것은 아무래도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 등 전후시기였다 할 수 있다..

군산과 같은 중소도시에는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됐을 것은 분명하다.

그 시절 대학가도 이런 흐름에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지금과 다소 다른 음식문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전에 몇몇 음식점들은 있었을 것이지만 ‘ ~로스’라는 이름으로 대유행하던 첫 문을 연 음식점은 아무래도 원풍로스로 알려진 원풍식당(1982년 6월)이었을 것이다.

이 곳은 은박지를 깔아 기름을 걸러내 수십 년 동안 군산 육고기 음식점으로서 각광을 받아왔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그 시절 고기집들에선 상당히 유행하는 방식이었다.

석판과 특화 금형판이 나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으로 서수로스(1989년9월)와 소성로스(1990년 12월), 새터식당(1992년12월), 대명로스(1995년 11월), 남도로스(2000년 12월) 등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래도 군산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회자된 원풍식당과 대명로스는 고기구이를 취급한 대표 음식점이었다 할 수 있다.

지금도 그 명성에 이의를 달고 있는 지역미식가들은 많지 않다.

이른바 ‘원풍- 대명(또는 소성)로스’ 시대를 활짝 열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영화로스를 운영하던 음식점 주인은 엄청난 돈을 벌어 새로 건물까지 지을 정도였다. 그후 영업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시청 등 관가사람들은 이곳에서 쇠고기 등심 등을 먹는 날이면 잘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자랑하곤 했단다.

이들보다 사회적 평가가 높은 법조타운 인사들이나 기업인들의 예약 쇄도는 유행처럼 음식점들을 생겨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원풍식당은 원조답게 이곳 사장의 아들이 몇 년 전 조촌동에 원풍갈비란 이름으로 독립, 2세 시대를 열고 시민들의 미각을 사로잡기 위해 부모의 명성을 잇고 있다.

이 밖에 남도로스도 독특한 불판 위에 돼지 및 소고기 등을 구워 먹는 방식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자극, 20년 동안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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