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맛' 대첩] 지역 경쟁력 원천 ‘맛 DN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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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 대첩] 지역 경쟁력 원천 ‘맛 DNA’(1)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1.13 15:57
  • 기사수정 2022-01-14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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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음식류 유입… 근대‧ 한국전쟁‧ 글로벌시대 다양한 재료 무장
소바‧ 빵‧ 냉면‧ 짬뽕‧ 떡갈비‧ 통닭‧ 커리 등 다국적인 음식들 토착화
회‧ 민물탕 등 전통 음식도 전국 강타
주말과 휴일이면 이성당 앞은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사진출처=군산시
주말과 휴일이면 이성당 앞은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사진출처=군산시

 

군산은 전북의 해외교류의 중심 통로다.
 수천 년 동안 바다를 통해 다양한 인적‧ 물적 교류를 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이웃 중국과 일본, 미국 등 각국이나 각 지역들로부터 바다와 육상을 통해 음식들이 유입되어 왔고 그 맛들을 받아 들여 토착화 과정을 거쳐 전국적인 맛의 고장으로 입지를 굳혀왔다.

근대기에는 일본과 중국(청나라) 등의 국제적인 음식들은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이국적인 음식과 토착적인 식감들이 결합하면서 군산적인, 아니 새로운 한국음식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들 국가의 고유 음식 특성을 지닌 채 들어왔지만 육지와 바다를 낀 군산지역의 환경적인 특성과 어우러져 전혀 다른 맛을 지닌 오늘의 군산 대표음식을 탄생시켰다.

이들 음식이 소바와 빵, 커피, 회 등의 일본류 음식이었거나 해안도시인 군산의 특성과 어우러진 것이었고 중국 음식 중 토착화된 것도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짬뽕과 짜장 등 중화요리, 호떡 등이다.

우리 음식이지만 일제강점기 때부터 발전해온 음식도 있다.

그 대표 음식이 떡갈비다.

한국전쟁기에는 황해바다를 통해 피난 온 북한지역의 서북쪽 주민들이 집단 이주해와 새로운 맛을 더했다.

이들로부터 들여온 음식들로는 온반과 냉면 등 북한 음식들이었고 이 음식들 중 상당수 조리법은 이미 토착화 된 지 오래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토착화된 음식 중에는 미군비행장주변의 음식인 부대찌게와 햄버그 등도 있지만 근대기에 들여온 커피 등의 양식(洋食)들도 엄청난 변화과정을 거쳤다.

최근에는 통닭과 꽃게장 등 고유 음식들이 진화과정을 거쳐 다양한 요리로 변모해왔고, 여기에다 국제결혼여파로 군산에는 다문화가족들이 다수 탄생했다.

이 영향을 받아 새롭게 군산에 들여오는 인도 커리와 베트남 칼국수 등 각국의 음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 음식들이 토착화과정을 거치고 있다.

맛을 중심으로 논의의 장을 연 이유는 먹방(방송의 먹는 프로그램)과 맛 기행 등으로 군산을 찾은 관광객들이 급증한데 따른 것이다.

이에 본보는 약 20여 차례에 걸친 맛의 역사와 시대별 특징을 통해 군산의 관광 경쟁력 제고를 위해 본 시리즈물을 다뤘다.   

<편집자주>     

 

군산의 음식 역사 개요   

군산의 대외교류 역사는 각국과 각 지방의 음식 유입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세계 각국의  대부분도 이 같은 유사한 흐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군산의 음식에 가장 큰 변화하게 한 대사건 중 하나는 1899년 개항.

세계 각국이나 지역들은 수백 년 동안 음식이나 각종 문화교류를 통해 직간접으로 상호영향을 끼쳐왔고 그런 방법으로 이질음식과 토착음식의 혼합은 물론 새로운 음식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개항은 군산역사상 가장 격동기적인 음식의 변화상을 보여줬다.

항만을 끼고 있는 지역답게 근대기 다수의 일본인들은 기존의 어류를 끓여먹던 탕(湯) 중심의 우리나라 전통음식에다 회 문화를 접목시켰을 뿐 아니라 소바와 빵 등의 음식을 들여와 지역음식에 역동적인 변화를 줬다.

이런 음식의 유입은 선주민이든 지금의 주민들이든 토착화 단계를 거치면서 새로운 유형의 맛과 음식의 탄생을 가져왔다 할 수 있다.

이들 음식의 후예들이 지금의 각종 횟집과 생선탕, 초밥 등이라 할 수 있고 군산의 빵 또한 그렇다.

이들 빵을 만든 장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전수받거나 종업원으로 근무하다 해방을 맞자 일본인들이 남겨둔 곳을 도맡아 오늘에 이른 것도 있고 일부 장인들은 장기간 지역민들의 맛을 사로잡다가 그 후예들에게 바통을 넘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엄청나게 유입된 군산은 과거와 전혀 다른 개방성을 바탕으로 도내 대표적인 선진문화교류도시였을 뿐 아니라 서해안 거점지역 중 하나로 성장해왔다.

이런 지역적 특색에 따라 맛 또한, ‘전통식- 일식- 중국식- 양식’ 등의 다양한 특징을 지닌 고장으로 우뚝 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군산에 가서는 맛 자랑을 함부로 하지 마라’는 우스갯소리가 새로 만들어질 정도

군산의 일식 요리는 한때 전국적인 수준을 자랑했지만 최근에는 고급을 지향하는 대도시의 일식집들에 비해선 다소 초라한 영업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생선탕집들의 맛은 전국적인 수준급에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각종 회들이 맛보기용으로 나올 정도로 풍성함을 자랑하고 있다.

아직도 도내 회 요리는 군산만한 곳이 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 음식점들이 도제식으로 주방에서 기술을 익힌 횟집 요리사들의 생활터전이자 과거 일식 요리집의 먼 후예들이다.

 

토종 빵집들 맛 전국 강타… ‘빵 맛 대첩은 현재 진행형’

특히 일제강점기 때 서양 빵을 들여와 토착화했던 일인(日人)들은 다수 빵집들을 운영했고 그들이 떠날 때 이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업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최고의 빵집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이 이성당이다.

군산의 빵집은 이성당의 역사와 브랜드만큼이나 알려진 동네빵집들도 적지 않다.

영국빵집, 오남매 빵집 등도 있고 과거에는 조화당이란 빵집도 이성당과 함께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

군산의 빵 맛은 이미 현지에서는 토종의 강한 맛으로 승부, 지역의 제과 업계를 탄탄하게 지켜주고 있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 근무했던 종사자들이 전주와 익산 등에서 군산의 맛을 드높이고 있다.

이런 맛을 간직한 역사 때문에 과거 군산출신 고위 간부로 있는 대형건설업체에서 수주하기 위해 빵을 보내 성공했다는 인사들에서부터 김영란법이 적용되기 위해선 군산의 빵을 보내면 최고의 선물로 인정받을 정도였단다.

물론 지금도 법률의 한계 내에서 이런 흐름은 여전한 것이 관가 등에서 통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의 한 인사는 “10년 전 이성당의 빵을 통해 대형업체의 출향인사에게 전했는데 다른 무엇보다 로비 효과가 있었다”면서 고향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한 공직자는 “전국적인 음식을 보내줘서 무척 흐뭇해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고 전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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