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맛' 대첩] 중국+ 전통 음식 새로운 음식 탄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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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 대첩] 중국+ 전통 음식 새로운 음식 탄생(3)
  • 정영욱
  • 승인 2020.01.16 16:05
  • 기사수정 2022-01-14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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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 짜장면‧ 탕수육 등 토착 음식문화 통한 지역 맛 선도
화교 새로운 형태 식당 만들어 100년 동안 지역민 맛 공략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 빈해원이 68년째 영업을 하면서 맛의 고장 대표 맛집으로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사진 출처=문화재청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 빈해원이 68년째 영업을 하면서 맛의 고장 대표 맛집으로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사진 출처=문화재청

 

과거 우리의 풍습은 졸업식 날이면 으레 한번쯤 중국음식을 먹었던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음식들은 어떻게 우리에게 전파되었을까.

그 음식들의 군산으로 전파된 시기는 개항기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으로 나뉠 수 있지만 초기 화교들의 군산이주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하겠다.

화교(華僑)란 말의 연원은 뭘까.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높여서 표현한 ‘중화(中華)’란 말과 남의 집이나 타향에 임시로 머물러 사는 ‘교우(僑寓)’란 단어의미에서 각각 따온 말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수천 년 이상 교류를 거듭해왔지만 근대기의 교류는 임오군란(1882년) 때 고종의 외척인 민씨 일가의 요청으로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진주했을 때였다.

 

화교의 군산 첫 이주

하지만 이 시기에는 주로 서울과 인천지역에 한정되었고 본격적인 화교들의 도내 이주는 기록상으로 볼 때 군산개항(1899년) 직후부터였다 할 수 있다.

이후 인천과 원산에 거주하던 청나라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전국 항구들을 중심으로 이주해왔고 중국~ 인천, 인천~ 군산 등의 국내외 정기여객선 항로가 개설돼 더욱 더 빈번해졌다. 지리적인 여건에 따라 중국 산동반도 중국인들이 중심이 됐다. 이 시기는 산동성지역의 대기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화교의 군산 진출은 그들의 먹고 사는 문제와 맞물리면서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단적 자료가 1924년 인천주재 중국영사의 협조를 받아 ‘인천상무 군산 분회’가 설치될 정도로 화교들의 이주가 활발했다.

초기 군산화교들은 요식업 종사자와 포목점 상인, 농지를 경작한 농민, 부두 노동자 등이었다. 이들이 운영하던 동해루, 쌍설루, 평화원 등 중국음식점들이 유명세를 탔다.

이들 화교들은 1960년대 전국 4만여명에 달했고 군산 등 전북지역에도 수천 명에 이르렀다. 그 후 도내 거주 화교는 급감, 군산거주화교는 2002년 기준 170여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화교 급감 원인은 경제 활동의 제한과 이중국적 및 화교학교 불인정 등 정부의 차별정책도 한 이유이지만 산업화 이후 전북 낙후 등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화교의 본격 이주는 군산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120년 화교 이주 역사 중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중국 음식의 유입이라 할 수 있다.

 

중화요리 토착화

군산의 화교들은 초기와 달리 음식점 운영 등으로 경제적 기반을 크게 잡았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본국으로 가려던 이들에게 중국 공산당의 대륙 장악은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했다. 여기에다 기존 군산거주 화교들은 해방과 한국전쟁기를 거치면서 다른 직업 대신 음식점에 치중했다.

중국음식점의 맥은 빈해원과 국제반점, 신풍원, 영빈각, 영화원, 홍영장, 용문각(2005년 폐업) 등의 간판을 걸고 지역 중화요리업계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 식성을 살린 음식들을 만들어 내 토착화됐다.

이들 중국집들은 다양한 중국 음식을 무기로 지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고 일부는 음식을 특화해서 오늘날까지 군산의 맛을 대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음식점 주된 요리는 짬뽕‧ 짜장면‧ 탕수욕 등이지만 그 음식들은 다양하다. 이 음식 맛을 보고 연구한 이들이 새로운 중국 음식의 토착화에 성공, 고유 중국음식 아닌 한국적인 입맛을 살린 중국요리집들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이런 유명 중국집들은 최근에는 군산을 맛의 고장으로 이끌고 있는 원동력을 작용되고 있다.

 

대표 중국집 빈해원의 등장… 2018년 문화재 등록

본래 물짜장으로 유명했던 빈해원은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 음식점이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지난해 8월 등록문화재(제723호)가 됐다.

화교 왕근석씨가 1952년 장미동에서 개업한 뒤 1965년 현재 건물로 옮겨왔고 1970년대 중반 증축했다.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로 쌓은 2층 건물로 개방된 느낌이 강한 내부 구조가 특징이다. 특유의 개방감 때문에 2014년 ‘남자가 사랑할 때’ 촬영당시에는 불법 도박장으로 꾸며졌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데다 군산생활사를 보여주는 곳이라 문화재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업 중인 식당이 문화재로 등록되기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고창 조양식당을 제외하면 유일한 사례다.

빈해원의 창업자인 왕씨는 산동성 영성시에 태어나 청운의 꿈을 품고 본래 인천으로 이주, 그곳에서 음식점을 열었단다. 한국전쟁으로 인천에서 더 이상 살수 없게 되자 1.4후퇴 때 제주도 피난하는 중에 타고 온 배가 고장 나는 바람에 군산에 안착, 후에 인천에서 같이 일하던 요리사들까지 이 사업에 합류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 메뉴는 탕수욕과 간짜장, 짬뽕 등이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중국 음식점은 만춘향.

화교였던 주인은 중식(중화요리) 뿐 아니라 한식과 일식, 양식 등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 백화점을 만들어 군산의 음식문화를 선도했다. 만춘향의 요리는 약간 느끼하면서 차이나 향이 진한 반면 빈해원의 요리는 순하고 담백했다는 게 1970~ 80년대 지역 미식가들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만춘향은 이곳의 주인이 별세하면서 안타깝게 문을 닫았다.

중국인들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한국적인 중국 음식을 만들어 군산의 대표적인 맛집을 이끌고 있는 음식점들이 있다. 짬뽕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군산의 짬뽕명가만 해도 빈해원을 비롯한 영화원, 복성루, 쌍용반점, 지린성, 왕산, 서원반점 등이 있다.

이들 음식점들이 인기를 모으자 지역에는 160여 짬뽕집이 운영되고 있고 시가 중심이 돼 짬뽕거리를 만들려고 했지만 행정적인 뒷받침과 참여자들의 무관심 등으로 별다른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전남의 한 지역의 국수거리 등처럼 획기적인 제도적인 뒷받침과 맛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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