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맛' 대첩] 서해안 최고의 갈치…군산의 대표 '먹갈치'(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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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 대첩] 서해안 최고의 갈치…군산의 대표 '먹갈치'(29)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7.27 16:05
  • 기사수정 2022-01-14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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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 냉장고가 없었던 인기 절정의 서해 앞바다 생선
그 시절 군산은 풍요의 고장… 안강망 선주들 돈방석 속 지역경제 주름잡아
궁전갈치. 군산갈치, 형제갈치 등 음식점 성업… 전국의 유명인들 입맛 사로잡아
신창동 궁전갈치찜
신창동 궁전갈치찜

 

갈치는 ‘역어유해’에서는 군대어(裙帶魚)라 하고 한글로 ‘갈티’라고 했다. 자산어보에도 군대어라 하고 속명을 갈치어(葛峙魚)라고 했다.

또는 칼치·도어(刀魚)라고도 한다.

갈치란 이름은 형태가 칼과 같이 생긴 데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문기는 신라시대에는 ‘칼’을 ‘갈’이라고 불렀으므로, 옛 신라 지역에서는 지금도 갈치라 부르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칼치라고 부른다고 했다.

난호어목지와 임원십육지에서는 가늘고 길어 칡의 넌출과 같으므로 갈치(葛侈)라 한다고 하였으나, 갈(葛)자는 차자(借字)로 보인다.

갈치는 길이가 150㎝ 정도로 매우 길며 측편(側扁)하다. 비늘은 없고, 몸빛은 선명한 은백색이다.

아래턱이 돌출하고 있으며, 양턱과 구개골에는 크고 억센 이빨이 있다. 등지느러미는 하나로, 거의 등 전부에 걸쳐 있다. 배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는 없다.

비교적 원해(遠海)성이나 산란기인 8, 9월경에는 얕은 곳으로 이동해 온다. 알은 부유성이고 연한 등색이다.

치어는 몸의 폭이 넓고 머리가 크며 띠 모양이 아니다.

갈치는 굶주리면 제 꼬리를 뜯어먹으며 같은 종의 꼬리를 잘라먹는 습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여러 곳에서 잡히며, 특히 서남해에서 많이 잡힌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청도·강원도·경상도·전라도 지방에서 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갈치는 옛날부터 많이 잡히는 다획성 대중어로 우리 민족이 즐겨 먹어온 바닷물고기이다.

난호어목지에서도 갈치는 염건(鹽乾)하여 서울로 보내는데, 맛이 좋을 뿐 아니라 값이 싸다고 했다. 한국수산지에 의하면 모심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소비된다고 한다.

# 군산의 갈치 전성시대… '먹갈치'

생선을 그대로 먹기도 하고 말려서 먹기도 하였으나, 주로 구이나 조림으로 먹는데, 경상도 지방에서는 국을 끓이기도 한다.

갈치는 속성상 쉽게 상할 수 있어 소금으로 절인 ‘간갈치’를 소리나는 대로 ‘강갈치’라고 아는 웃지 못할 상황도 있었다.

이 원리는 안동의 간고등어와 흡사하다.

과거 군산에서 먹었던 갈치는 지금과 다소 차이가 있었단다.

먹갈치라고 부른 서해안 최고의 갈치로 명절 때면 인기 선물세트였다. 이 맛을 보고 그 사람에게 고마움은 물론 또 구해달라고 했던 그 시절 최고의 생선이었다.

은색의 제주산 갈치와 비교되는 먹갈치는 회색을 띤 갈색 갈치로 목포, 군산 등의 갈치를 지칭하며 맛은 은갈치와 비할바가 아니다.

1980년대 어느 날까지 갈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그야말로 국민생선이었지만 남획 등으로 90년대 들어선 군산 연안에서 잘 잡히지 않은 상황으로 변했다.

이 시기에 먹었던 갈치는 어장이 확대되고 어획 기술이 발달한 결과로 원양어업에 의존했지만 갈치의 고갈로 이어져 국민생선의 타이틀조차 내놓아야 했다.

최근에는 연안 갈치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제주산 은갈치로 그 맛을 대신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가격 때문에 누구나 볼 상황은 아니었다.

안강망어선들이 잡은 갈치들은 당시 해망동 어판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나무상자로 된 괴짝채로 팔려나갔다. 배들이 만선이 되어 들어오는 날이면 그야말로 군산에 돈이 엄청나게 풀려 지나는 개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말까지 나왔다.

교통수단이 발전하지 않은 그 시절에 군산선의 미니 기차(3~4량의 動車)의 화물칸은 갈치 괴짝들로 가득했고 그 냄새로 얼룩졌던 풍경들이 통근 열차의 일상이었다.

갈치를 팔며 생업으로 생활했던 생선장수 아주머니는 군산역~익산~전주역(군산선과 전라선), 군산역~익산~강경역(군산선과 호남선 상행선), 군산역~익산역~김제‧ 정읍역(군산선과 호남선 하행선) 등을 오가면서 팔면서 자식들을 키웠던 삶을 살았었다.

그야말로 도내 농촌과 산간지역을 오가는 움직이는 생선가게라고 하면 지나친 얘기일까.

이 시기 군산은 풍요의 고장이었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비해 맛이 있는 생선을 풍부하게 먹고 살았던 곳이었다 할 수 있다.

그 시절을 어느 주민은 “해망동 어판장에서 군산역을 통해 오가는 생선장수 아주머니들의 행렬은 기차에서 장관을 이뤘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한편 은갈치는 은빛이 나고 살이 단단한 갈치로 여름부터 가을까지 낚시로 잡힌다. 제주 서귀포 연근해에서 잡히는 갈치다.

# 군산 갈치 맛 최고… ‘궁전갈치’ 등 여전히 인기

최근 군산의 맛집에는 전국의 갈치 음식 마니아들의 발길이 쇄도하고 있다.

20년 전 일본식 가옥형태를 리모델링한 궁전갈치는 오래전 군산 유명 병원 중 하나였던 만수병원의 병원장이 살았던 사택이었다.

지역의 오래된 인사들은 이 건물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최근에는 갈치 음식의 명가로서 더 알려졌다.

김인화 사장은 음식점을 처음부터 운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 월명동 등 군산의 원도심이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기 전에 우연한 기회에 매입했단다.

유명했지만 처음에는 쇠락했던 이 건물은 정성스럽게 옛 정원의 정취를 다시 살려 이 건물을 새롭게 바꿔 작은 도심 공원을 연상케 하고 있다.

이곳을 임대해줬다가 방치하기 싫어 요식업 분야에 뛰어든 김 사장은 한때 서민음식의 대표주자인 갈치요리를 현대적인 감각과 맛을 살려 식단에 올려놓기 위해 상당한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했다.

왜 김 사장은 갈치 맛에만 꽂혔을까.

1970~ 80년대 군산은 온통 갈치 나라였다. 다른 생선에 비해 값도 값이었지만 어떤 양념이나 식재료와도 오묘하게 녹아내려 서민의 음식 중 으뜸이었기 때문이었단다.

이런 경험이 맛을 더해 지금의 대표 맛집 ‘궁전갈치’의 숨은 동력이 됐다.

김 사장이 갈치요리에 관심을 쏟은 것은 결혼 후 시댁이 있는 군산 신흥동에서 시어머님의 각종 갈치요리를 맛보면서 배우고 체득한 뒤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음식 및 반찬으로 만들어주면서부터다.

이 요리를 수십 년 동안 만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엄마표 갈치 요리전문가’로 등극하게 된 것.

굳이 ‘엄마표 갈치요리’를 강조한 것은 이런 갈치요리의 실력 덕분에 두 아들을 건강하게 키워 운동선수 등으로 두각을 나타나게 했다는 말까지 듣게 됐다.

이중 국내프로야구계 뿐 아니라 국가대표 외야수였던 큰아들 이진영 선수를 키워내는 밑거름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다방면에서 지역 아마추어 선수 등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 사장의 둘째 아들까지 그때 갈치 맛을 보면서 지금껏 병치레 한번 하지 않았을 정도란다.

갈치요리 음식과 자식들의 건강은 일종의 동의어(同義語)처럼 작용했다.

과거의 갈치는 서해 연안에서 잡아 염장해서 우리와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원양어선으로 잡아야 할 정도로 수산자원의 환경이 급변, 어획에서 식단까지 오르는 과정이 복잡다단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요즘 음식점 식단에 오르는 ‘갈치’의 맛은 해동(解凍)하는 법이 핵심적인 포인트.

김 사장은 해동의 비법을 찾기까지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한 끝에 약 10년 전,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손님들은 갈치요리에 나온 것을 생물로 착각하고 어디에서 잡았느냐는 질문을 쏟아내곤 한다.

이렇게 시작한 영업이 벌써 20년째로 향하고 있다. 영업이 아닌 음식을 기준으로 하면 40년 갈치요리를 해와 군산 갈치 음식의 전문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이런 경험을 살려 갈치에다 무, 호박, 감자, 간장 등을 첨가해 갈치의 비린내를 잡고 천일염 등을 더하면 일품의 갈치요리가 탄생한다. 대파와 양파, 고추 등 모두 10~ 20가지 양념을 넣고 푹 고아낸 갈치 육수는 마니아들로부터 극찬을 받을 뿐 아니라 맛을 잊지 못한 단골들의 입맛을 유혹하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론 조미료는 전혀 쓰지 않고 맛을 내 새로운 군산의 전통 건강식을 만들었고 이 덕분에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여기에다 황기순과 주현미 등 유명인들에서부터 일반인들까지 주말이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단다. 물론 코로나 19 상황 속이어서 어느 가게나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손님들의 사랑을 조금씩 갚는다는 마음으로 오래전 시작한 불우이웃 등을 위한 작은 선행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고향은 아니지만 수십 년 전 군산에서 살아온 김 사장은 시댁의 손맛을 바탕으로 성업의 비법의 하나로 친절을 꼽는다. 손님이 오면 누구나 맛은 물론이고 친절한 누님과 같은 서비스로 대해 손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고 있다.

김 사장의 친절은 자녀들을 기른 부드러운 모성애와 같은 행동에서 나온다는 게 단골들의 일관된 평이다. 이를테면 부모가 최선을 다해 자식들에게 다가가면 잘 성장해줄 뿐 아니라 커서는 효자가 된다는 김 사장 부부의 평범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한편 군산갈치집들은 예전만 못해도 여전히 맛을 유지하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진포갈치고등어조림(1997년 11월), 군산갈치(2000년 4월), 군산구이나라(2001년 5월), 오맛있는 집(2011년 10월), 형제갈치(2012년 4월) 등도 활발하게 영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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