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맛' 대첩] 군산만의 갈비 등장… ‘완주옥과 그 후예들’(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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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 대첩] 군산만의 갈비 등장… ‘완주옥과 그 후예들’(6B)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2.25 09:12
  • 기사수정 2022-01-14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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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고기숙성’ 맛의 최고봉… 새로운 지역특유의 갈비 탄생
군산만의 갈비… 떡갈비‧ 갈비 등 향토 고유성 살린 ‘맛 집들’ 붐
이제 와서 “어느 집이 원조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
군산의 노포 '완주옥'
군산의 노포 '완주옥'

 

군산의 갈비 음식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특히 떡갈비와 일반갈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 맛의 도시 군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국의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군산의 원조 갈비는 아마도 1930~ 1940년대에는 어느 정도 대중화 단계에 도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화석화된 결정적인 근거는 요정문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전편에서 우리나라의 갈비 역사를 다루었듯 1920년대를 지나면서 요정 등과 같은 당시 고급 음식점에서 주로 만들어진 음식이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군산에도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와 안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말기와 해방정국 등에서 갈비의 맛이 일부 요리전문가들에 의해 전해지다 한국전쟁을 거쳐 산업화시기에 접어들면서 경제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풍요한 군산에서 꽃을 피우지 않았나 싶다.

이런 배경아래에서 군산의 갈비는 떡갈비와 양념갈비 등으로 나눠 발전해왔고 최근 젊은 연구가에 의해 새로운 갈비요리가 탄생, 한식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군산갈비의 원조...완주옥의 탄생

군산의 갈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완주옥이다.

군산시청 과장이자 시인이었던 최영(작고) 작가는 그의 군산풍물기에서 완주옥의 시작을 이렇게 적고 있다.

구시장에서 장국집을 영업하던 한 할머니에 의해 비롯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완주옥은 공부상에도 1976년에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갈빗집이었고 이 음식점을 창업한 사장은 초기 군산요식업조합 간부였다. 그 당시 음식점들이 지금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부상 가장 오래된 음식점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

이곳의 진모 할머니가 만든 떡갈비가 오늘날 ‘군산갈비의 원조격’라는 게 일반적인 통설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군산갈빗집이 떡갈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지역과 유사한 오래된 갈빗집도 있지만 이를 원형이나 대표 갈비 요리로 삼을 수 없는 일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완주옥의 탄생이

오늘날 군산갈비의 원형이자 출발이라는 정설에는

큰 이의를 달지 않고 있지만 본래 완주옥의 주인들이 숱하게 바뀌어서

‘원조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완주옥의 탄생이 오늘날 군산갈비의 원형이자 출발이라는 정설에는 큰 이의를 달지 않고 있지만 본래 완주옥의 주인들이 숱하게 바뀌어서 ‘원조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이유는 완주옥의 원주인과 그 후손들에 의해 맛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주방장이나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 방계가족 등에 의해 오늘의 군산갈비가 진화됐거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군산갈비의 시작은 완주옥이라는 정설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관련업계와 지역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그 이전의 갈빗집과 유명한 맛집이 사라졌거나 그 뒤를 이은 사람들이 없어 이를 무조건적으로 원조로 삼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런 완주옥의 출발을 살펴보자.

군산토박이들은 완주옥의 출발을 한국전쟁기, 1950~ 1952년으로 보고 있다. 진 할머니의 장국집보다는 일제강점기 때  요정 등 고급음식점에서 요리했던 맛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고 추정하고 있다. 완주옥이란 어원 역시 진 할머니의 고향인 완주(完州)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추론되고 있다.

이런 완주옥의 역사는 여러 방향에서 오랜 역사는 있지만 공부상은 1976년 2월로 되어 있다.

그 당시 고급음식점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일제강점기의 경우 요정과 고급일식집 등을 지칭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과거를 꺼내 군산갈비 맛의 원조격 요리전문인이라 할 수 있는 진 할머니의 명예를 건드리고 싶지만 그 당시 고급 요리집인 요정과 일본 고급요리집 등에서 그녀가 일했다는 지역원로들의 여러 증언(?) 등을 종합해 볼 때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일인 것 같다.

물론 음식을 만드는 일에 종사했다는 뜻이지 다른 일로 직업을 삼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시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갈비 맛을 보았던 층들은 극히 한정적이었을 것이다.

진 할머니의 갈비 맛은 고깃살을 연탄불에 구워 내놓고 단순한 떡 모양이 아닌

파전과 같은 동그랗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즉 제사상에 오르는 시루떡 모양이거나 치댄 흔적이 없이

갈비 살에 다른 소고기 부위를 섞어서 만든 것이다.

진 할머니의 갈비 맛은 고깃살을 연탄불에 구워 내놓고 단순한 떡 모양이 아닌 파전과 같은 동그랗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즉 제사상에 오르는 시루떡 모양이거나 치댄 흔적이 없이 갈비 살에 다른 소고기 부위를 섞어서 만든 것이다.

이는 담양과 광주 송정 등지의 호남 떡갈비와도 다른 모양이어서 같은 호남권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싱거우면서도 개운하고 감칠 맛 나는 백동치미가 최고의 별미다. 이런 특징은 완주옥과 그 후예들에게 나타난 거의 공통된 점이기도 하다. 싱겁고 백동치미를 공통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른 일본식 요리법을 어느 정도 차용했거나 군산의 지리적 여건 고려할 때 호남권이란 점에서 인근지역의 요리법을 승계하는 형태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뿐이다.

이런 맛은 원조 진 할머니(원조)가 돌아가시고 그녀의 따님인 홍모 할머니(2대)가 갈빗집을 이어 받았는데 이 시기에 초가집이었던 완주옥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 할머니의 아들인 김우태씨가 1990년대 중반까지 영업을 하다 호주로 떠났는고(이민) 그 후 지금 사장인 최영수씨와 그 가족들이 1996년경부터 완주옥을 운영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김우태 사장은 호주 이민 후에 다시 국내로 돌아와서 경기도 이천에서 한정식을 운영하고 있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1960년대 이후 반세기 이상 완주옥의 갈비 맛을 주로 봤던 층은 그 지역의 유지와 특정 사업가, 관가(官家)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군산갈비의 발전과 전성기

대중화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변했는데, 이 시기를 군산갈비의 3세대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군산갈비의 3세대에 이르러서야 일반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 시기에 완주옥과 그 후예들이 크게 분화 발전됐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사이에 완주옥은 주인이 몇 차례 바뀌었고 이곳에서 일했던 주방장이나 찬모들이 1990년대 들어 하나 둘씩 독립, 군산만의 갈비가 새롭게 입지를 굳혀가던 시기였다 할 수 있다.

그 갈빗집들의 시작을 보자. 완주옥 이후 진갈비(영업개시일 1991년 4월)와 우리떡갈비(1993년 4월), 내갈비(1994년 4월) 등이 제2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군산떡갈비(2014년 9월) 등이 등장했다. 이 떡갈비집들이 오늘날 군산 갈비 맛의 대표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군산적인 떡갈비와 다르게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명월갈비와 나운동소재 더갈비(2008년 3월) 등도 새롭게 탄생, 맛의 도시 자존심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 편은 당연히 완주옥의 후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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