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맛' 대첩] 한국전쟁 중 북한음식 군산과 깊은 인연(7A)
상태바
[군산 '맛' 대첩] 한국전쟁 중 북한음식 군산과 깊은 인연(7A)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3.03 10:39
  • 기사수정 2022-01-14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전쟁기 집단 군산이주… 평양냉면‧ 온반 등 지역민 ‘입맛 저격’
전국적인 북한 음식 지역 맛집들 등극… 일부 군산대표 음식 성장
뽀빠이냉면
뽀빠이냉면

 

우리가 평소 즐겨 먹는 이북 음식은 몇 가지나 될까.

우리가 평소 즐겨먹는 우리 주변의 이북음식은 어떤 종류가 있으며 유래된 시기는 언제였을까.

군산 속 북한음식 혹은 이북식 음식. 평양냉면, 온반, 어복쟁반, 쟁반전골 등이 지역 대표 음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한국전쟁은 군산지역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중에서 1951년 1.4후퇴로 황해도와 평안도 등의 주민들이 대거 군산 땅을 밟게 됐다. 이때 이들 실향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화교들처럼 작은 음식점 등을 열어 삶을 연명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조촌동 평양온반
조촌동 평양온반

이들은 자신들의 고향 전통음식을 만들어 팔면서 생활 터전을 가꿨고 일부는 음식점을 열어 지금까지 2~ 3대를 잇는 지역 대표 맛집으로 우뚝 섰다.

자신들의 전통 음식과 전라도, 혹은 군산의 음식이나 그 재료들과 화학적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는 곳까지 생겨났다.

◆군산 속 이북음식은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라는 평양냉면과 만두, 어복쟁반과 녹두빈대떡, 찹쌀순대 등은 누구나 친숙하게 떠올리는 북한음식이다.

분단의 아픔이 켜켜이 스며든 고향의 맛은 어떤 이에겐 애틋한 향수를,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염원을 달래주는 향수 짙은 음식이다.

일종의 소울 푸드다.

압강옥
압강옥

또 다른 이에겐 새로운 음식과의 단순한 만남일 수 있다.

# 이북식 냉면과 국수

이북 음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 중 하나는 아마도 평양냉면일 것이다.

아무나 그 맛을 느낄 수 있지만 그 고유의 맛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 맛을 이야기하는 것은 면발을 치아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목젖으로 끊어 먹는다는 메밀의 부드럽고 구수한 맛까지 음미할 만큼 미식가로 등극하는 것은 아득한 맛의 득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심심했던 육수가 문득 육향을 품은 최고의 국물로 느껴질 때 평양냉면의 고유한 맛이 비로소 시작된다.

# 어복쟁반

놋 쟁반에 갖가지 고기 편육과 채소를 푸짐하게 담아 육수를 부어가며 여럿이 끓여 먹는 전골이다. 인정 많은 평안도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며 즐겨 먹던 요리라고 한다.

# 온반

맑은 육수는 소고기와 닭 육수를 섞어서 쓴다.

온반에 꾸미로 올리는 녹두전은 따뜻한 육수에 적셔 먹는 맛이 부드럽다.

100% 국산 녹두와 돼지고기 간 것, 숙주, 백김치를 넣어서 노릇노릇하게 부쳐내서 별미다.

온반에 꾸미로 올린 녹두전을 맛보면 녹두전을 주문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 새로운 별미 ‘오리국수’

쫄깃하게 삶아낸 소면에 쭉쭉 찢은 오리고기 꾸미를 올린 것 말고는 맑은 육수가 전부인 오리국수.

비주얼은 서운할 만큼 간단한 오리국수이지만 국수 한 젓가락과 국물을 들이켜면 아쉬움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맑고 깔끔한 육수만으로 국수가락이 술술 들어간다.

오리고기는 볶음으로도 인기다.

설탕과 식초로 하룻밤 재워 잡냄새를 잡는데, 이렇게 담백한 조리법은 순수하게 재료의 맛을 살리는데 중요하다고.

한편 찹쌀 순대는 간 돼지고기, 배추, 대파, 깻잎을 넣어 누린내를 잡고 쫀득한 찹쌀이 넉넉히 들어가 입에 착착 붙는다.

돼지머리를 통째로 갈아서 만든다는 것이 보통 이북식 정통순대다.

◆우리나라 국수 유래… 냉면의 탄생

우리나라에 국수가 등장한 것은 고려 때다.

국수문화가 한창이던 송나라로부터 유래됐을 개연성이 높다.

통일신라기까지 우리 문헌에서는 국수를 찾아볼 수 없는데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 인종 1년(1123년) 고려를 방문한 뒤 쓴 ‘고려도경’에는 ‘10여 종류의 음식 중 국수 맛이 으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사에 ‘제례에 면을 쓰고 사원에서 면을 만들어 판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뤄 고려시대 국수가 있었을 뿐 아니라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출생 후 3일째 되는 날에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이 국수를 먹던 풍속이 나오고 있다.

국수틀이 기록상으론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가 쓴 임원십육지에 ‘면착기’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지금도 강원도 산간지역에는 국수틀로 메밀국수를 뽑아 먹는다.

냉면은 본래 겨울 음식이었다.

메밀은 수확이 늦가을에 이뤄져 겨울이 제철인 셈인데다 육수에는 김장으로 담근 동치미나 백김치의 국물을 썼으니 이래저래 겨울이 돼야 먹을 수 있었다.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도 냉면을 즐겼단다.

요즘으로 치면 동짓달이 되면 평안도와 황해도 북부지역 사람들이 ‘물냉’과 ‘비냉’을 시절 음식으로 즐겨먹었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조선 후기 유득공이 평양의 풍속을 노래한 ‘서경잡절(西京雜絶)’에서 냉면 때문에 돼지 수육 값이 올랐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면 18세기 평안도에서 냉면이 대단히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냉면은 조선 후기 순조 때 궁중음식으로 편입됐을 뿐 아니라 일반 백성으로부터 왕실까지 상향적으로 전파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 평양냉면 본격 등장… 일반 상품화된 냉면의 특화품

냉면 중 평양냉면은 1920년대 중반 경성의 요정에 진출하면서 전국적인 상품으로 떠올랐다.

메밀을 주로 사용하는 평양냉면과 당시 조선에 상륙한 일본의 메밀순면인 소바와 결합, 평양냉면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시기에 평양냉면의 조리법이 표준화되면서 본고장 평안도는 물론 서울과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겨울철 별식이었던 냉면이 여름 음식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한여름에도 얼음 조달을 쉽게 할 수 있는 근대적인 제빙(製氷)기술과 겨울에 캐던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할 수 있는 냉장시설이 등장하면서 가능해졌다.

이런 흐름에 따라 근대적인 제빙소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9년 부산항 근처에 공장을 세운 탁지부에 의해서였다.

그 다음해 일본인이 운영하는 수산회사에 넘어갔고 이 회사는 이어 제물포와 원산, 군산 등지에도 공장을 열었다.

냉면업계의 구세주라 할 수 있는 화학조미료 ‘아지노모도’였다. 아지노모도는 화학적 방법으로 만든 글루탐산이다.

1915년경 조선에 들어와 1920년대 말에는 전국을 석권했고 냉면의 사계절화 및 냉면집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래 평양사람들은 동치미를 담글 때 익힌 쇠고기나 돼지고기 덩어리를 넣어 냉면 육수를 마련했는데 이로 인해 냉면육수에는 동물성 단백질의 아미노산 맛이 배어 있었다.

아지노모도가 만들어지면서 냉면집 주인들의 수고와 번거로움을 한꺼번에 덜어줌으로써 정통육수를 대신해 냉면집을 접수하고 평정,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