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함정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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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함정 25-11
  • 김선옥
  • 승인 2023.10.02 06:38
  • 기사수정 2023-10-08 0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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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22-10에 이어) 윤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윤은 그녀가 현주에 대한 분노를 다시 지니게 될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지금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해 온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그걸 더 염려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느낄 소외감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현주를 생각하자 잊으려 했던 상처가 다시 쓰라려 오는 것을 느꼈다.

불현듯 현주와 함께 파독 간호사 연수를 받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그녀는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현주는 달랐다. 유혹적일 만큼 화려했고, 누구든지 쉽게 친구가 되었다. 학교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굴레를 벗어 버린 망아지처럼 행동했다. 술이 덜 깬 얼굴로 강의실에 나오는 일이 허다했으며, 와서 강의를 제대로 듣는 법도 없었다. 남자들과 어울려 사라지거나 들락거리는 일이 잦아 연수 기간 내내 눈총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요란한 복장으로 등장해서 연수생들의 떨떠름한 시선을 받아도 당당했다. 그녀가 대동한 남자들의 얼굴은 수시로 바뀌었는데 어울린 남자 중에는 닥터 박도 있었다. 유부남인 박과는 학생 시절에도 말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지각이 있다면 멀리해야 마땅한 인물이었다. 현주의 그런 난잡한 행위들은 엄격한 절제를 요구했던 연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서독행이 무산되었다.

돌이켜 보면 현주는 떠나고 싶지 않아 고의로 그런 행동을 꾀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났다. 구역질은 독일에서도 곧잘 나타났던 증상이었다. 메스껍고 토할 것 같은 증상은 베링거와의 만남에 종지부를 찍던 날 생겨났다. 그리고 베링거가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엔 자주 생겨났다. 마음이 우울할 때거나, 좋지 않은 기분일 때도 증상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그녀의 증상들이 신경성이라고 진단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말하며, 정신과에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었다.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왜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지는 스스로가 잘 알았다. 못마땅한 일이 있거나 기분이 불쾌할 때 영락없이 찾아온 증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증상을 자각하고 있어 되도록 좋지 않은 기분들을 털어 버리려고 노력했다.

구토를 참으려 해 봤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저절로 이마가 찡그려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손수건을 입에 대고 두리번거리자 윤이 눈치채고 재빨리 부축했다. 윤을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에서 입에 대었던 수건을 떼자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구토증세가 씻은 듯 말끔히 사라졌다.

"괜찮니?

걱정스럽게 그녀를 살펴보던 윤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며 물었다. 윤을 안심시키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몸에 아무런 이상은 없어 갑자기 음식이 바뀌니까 적응하느라고 그런 모양이야."(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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