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함정 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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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함정 25-15
  • 김선옥
  • 승인 2023.10.06 05:36
  • 기사수정 2023-10-06 0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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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25-14에 이어)그녀가 간호학을 택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녀는 몸이 아파 어릴 적부터 방 안에 누워 있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그녀가 중학교를 마치기 전에 돌아가셨고, 그녀는 아픈 어머니를 보며 자라는 동안 커서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몸 바치겠다고 생각했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새롭게 다지곤 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몇 번이고 약속을 기억해야 했다.

아픈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일은 그녀의 소망이었다. 아무 일이 없었다면 그녀는 그 일을 이 땅에서 할 수 있었다. 그녀가 공부했던 간호학을 이곳의 사람들에게 정성껏 베풀었을 것이지만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 나라를 떠나면서도 그게 제일 생각났다. 한시도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는 사건이 그녀의 황금빛 시절을 빼앗고,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싹마저 잘라 버렸다.

그녀는 범인의 멍에를 벗어 버리지 못하고 공부하던 남은 세월, 분노와 절망을 감추며 보냈다. 환희나 꿈 대신에 회의와 아픔을 끊임없이 되씹었다. 그리고 이 땅을 벗어날 수 있는 날만을 기다렸다. 간호사를 대량으로 받아들인 독일은 그때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최적지였다. 그녀는어두운 기억들을 내던지고 기꺼이 그곳으로 떠났다. 그곳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음울한 과거와 함께 묻어 버릴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프트한자에 오르면서 그녀는 아름답고 그리운 것들과 어두운 기억들을 모두 함께 묻어 버렸다. 그녀는 새로운 이들을 만나, 새 삶을 찾게될 것이라는 희망에 젖었다. 기쁜 마음으로 아무런 미련도 없이 가볍게 한국을 떠난 그녀는 낯선 독일에서조차 새로운 시작을 꿈꾸지 못했다.

비슷한 일들은 독일에서도 덫을 놓고 그녀를 기다렸다. 인생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녀를 행복의 궤도에서 끌어내리려고 벼르는 숨은 복병처럼 거기에도 다른 모습의 현주가 있었으니까. 그녀는 현주로 인해 새로운 땅에서도 새 삶의 진입에 실패했다. 그녀의 실패는 어쩌면 베링거와의 관계를 제대로 이어 가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만남이 그렇듯이 헤어지는 것 또한 별게 아닌데도 그녀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꽤 힘들었다.

베링거와의 이별엔 해결되지 않은 사건의 감정들이 밑바닥을 흐르고 있었다. 그와의 이별이 아마도 더욱 견고한 벽 속으로 그녀를 숨어들게 하였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헤어짐이나 이별은 옳은 표현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둘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 적이 없었으므로 이별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른다.

베링거와 만남에서 그녀는 희망을 걸었었다. 그는 독일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었고, 배려심이 많았다. 어쩌면 그녀가 가깝다고 느꼈던 마음 역시도 그녀의 착각일 수 있었다. 그는 이국에서 온검은 눈동자의 검은 머리칼인 여자에 대한 환상을 지녔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가 늘 보던 이웃이 아닌 특이한 외모에 마음이 끌렸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마음 깊이 질기게 끈을 붙잡고, 놓지 못했다.

사실 겉으로 특별하다고 일컬을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언제나 특별한 존재로 그녀를 대우하였다. 가능한 가까운 사이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수시로 말했던 그는 농담처럼 아내가 되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점차 그를 인식하고, 그와의 관계를 정립하려고 노력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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