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함정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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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함정 25-6
  • 김선옥
  • 승인 2023.09.27 07:48
  • 기사수정 2023-09-27 0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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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25-5에 이어) 전화에서 윤은 모일 때마다 동기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그녀를 보고 싶어 한다고, 아이들이 그녀에게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생전에 보지 않는다면 그 애들의 가슴이 납덩이처럼 무거울 것이라는 말도 해 주었다.

만나서 꼭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부탁했지만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네들의 가슴에 무겁게 얹혀 있을 죄의식을 없애 주기 위해 이곳까지 온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떨어져 있던 동안에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던 윤의 한결같은 성의에 선뜻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아무런 말이 없자 윤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강당으로 들어간 윤을 지켜보면서도 그녀는 그만 달아나 버리고 싶었다. 그때도 그런 심정이었다.

그물망처럼 조여 오던 서늘한 시선, 그 방에서, 그들의 시선에서 도망쳐 감쪽같이 숨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좋은 결과가 있을 때까지 그녀는 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도둑으로 몰려 쓰레기처럼 취급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 쓸 바에야 형편없이 당하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았다. 피를 토하고 죽어 버리고 싶었으나 도둑의 누명을 쓴 채 죽을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모두 보는 곳에서 그만 죽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차라리 죽느니 치욕적인 삶일지라도 견디면서 누명을 벗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쉽게 죽을 수는 없었다.

윤의 말처럼 언젠가는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끝끝내 버티었다. 처참하게 망가진 자신을 추스르며 최대한의 인내를 발휘하여 버티고 버티었다. 사건이 종결되기를 참고, 기다렸다. 상처를 끌어안고 우렁이처럼 그녀의 방 한구석에 틀어박혀 그렇게 견뎌 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범인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도둑이란 오명과 뻔뻔하고 양심도 없는 인간이란 비난을 들으며 남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녀는 날마다 시간의 바퀴가 빠르게 굴러가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학교를 벗어나 그 사건을 잊을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달아날 수 있을 때까지 안간힘을 쓰며 기다렸다. 시간은 지독하게 길었지만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인내했었다.

윤이 강당에서 나왔다. 뒤를 이어 아는 얼굴들 몇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나왔다. 그녀를 향해 걸어온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녀도 손을 내밀어 그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건성으로 나누는 예의에 마음은 담겨 있지 않았다.

"많이 보고 싶었어 이제야 너를 만나다니 이렇게라도 만나서 정말 반갑다.”

펑퍼짐한 몸집인 애영이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마음과는 달랐는지 감격에 겨운 말투였다.

사건의 핵심에 있던 애영이도 이미 중년의 모습이었다. 날씬했던 예전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허리며 엉덩이에 군살이 붙어 아줌마 티가 역력한데도 특유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녀는 애매한 시선으로 애영을 바라보았다.(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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