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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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7
  • 김선옥
  • 승인 2023.08.26 09:56
  • 기사수정 2023-09-01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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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22-6에 이어)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얼굴을 마주칠 때 찡그리거나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웃는 어머니가 보기 싫어서 참으며 기다렸다. 화장실을 나와 절룩거리며 걸어온 어머니는 살그머니 내방문을 열고, 형편을 살피곤 했다. 그런 반복된 상황을 꿰뚫고 있었으므로 가만히 있는 것이 도리였다. 어머니는 오랜 시간 혼자만의 세계인 화장실 안에서 감정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라면 소리 죽여 울 수 있고, 욕설을 퍼부을 수 있으며 주먹질을 할 수도 있었다. 제발 그렇게 하기를 그러므로 감정의 찌꺼기를 어느 정도 걸러 낼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틈을 내어 도둑고양이처럼 걸어가 안방 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이미 잠들었으므로 들킬 염려는 없었다. 방에서는 시궁창 냄새가 났다. 입에서 나오는 지독한 술 냄새와 땀내가 섞여 썩는 듯 고약한 악취가 났다.어머니를 짓이기고 상스런 욕설을 퍼붓는 악마 짓만 멈추어 준다면 그런 것쯤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팔을 대자로 벌리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아버지는 언제 그랬느냐 싶게 깊이 골아떨어졌다. 양말도 벗지 않은 입은 옷 그대로 잠든 아버지의 모습에서 피곤하고 지친 기운을 느꼈다. 순간 무한정 기운을 쓸 수 있는 팔팔한 나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 무척 기뻤다.

시간이 되었으므로 나는 재빨리 방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잠든 아버지 곁에 다가가 냄새가 코를 찌르는 양말을 벗겨 내고 넥타이를 풀어 윗옷과 바지를 벗긴 다음 머리 밑에 베개를 넣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불을 꺼내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덮어 주고 뒤끝을 마무리할 것이다. 언제나 반복된 행위지만 아버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방에서 가지고 나온 아버지의 옷가지들을 세탁기 속에 집어 넣었다. 양말과 와이셔츠를 세탁하며 어머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깨끗이 세탁되는 옷가지들처럼 포악으로 얼룩지고 술과 욕설과 폭행으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인생이 혹시 세탁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가 다용도실에서 나와 거실의 소파에 앉는 것을 보고, 나도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비로소 어머니에게 휴식의 시간이 왔다. 벗어 놓은 빨래들을 세탁하며 낮 동안에 집안을 정리하거나 시장을 보았다. 두 손을 놓아 버리면 집안 꼴이 엉망이니 몸이 부서져도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제 아침까지는 어머니의 시간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어머니만의 귀중한 시간이었다.

아침이 밝았다. 술이 깬 아버지는 간밤에 일으킨 광란의 행동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밥을 먹고, 소리 없이 집을 나선 아버지에게 지난밤의 난리를 상기시킬 수도 없었다. 말을 하면 변명하거나 모른다고 시치미 뗐고, 저녁이면 미안한 기색 없이 흠씬 취해 들어와 또다시 미친 짓을 반복했다. 전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어머니가 누렸던 잠깐의 휴식은 사라지고, 악몽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므로 출근하는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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