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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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2
  • 김선옥
  • 승인 2023.08.15 06:42
  • 기사수정 2023-08-19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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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22-1에 이어)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랴. 그런 것들에 나는 관심이 없다.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은 치료를 받으면 그림자처럼 붙어 있던 폭력의 흔적들을 깨끗이 지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폭력의 망령들을 지워 버리고,어두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 뿐이다.

폭력은 어두운 습지에 피어나는 곰팡이 같다. 한번 피어나면 아무리 닦아도 지독한 냄새와 흔적들이 남아 있는 것처럼 폭력의 상처는 내 가슴에 그대로 남겨졌다. 화인처럼 폭력의 시간들 또한 끈끈하게 달라붙어 폭력이란 단어로부터 아직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날 이후, 연속적으로 이어진 폭력의 벼랑 끝에 홀로 위태롭게 서 있다.

나는 평범한 나날을 꿈꾸었다. 다른 가정과 똑같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의 일상, 그런 행복이 주어진다면 나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가 있다. 아버지 없는 삶이라고 무엇이 다를 바 있으랴. 그런 아버지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 그날의 기억들 또한 오래전부터 이어진 폭력의 연속선상에 있다. 폭력에 대한 세세한 기억들을 나는 어머니가 지닌 이마의 주름살보다 더 많이 꼽을 수 있다.

미처 정신을 차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눈을 비벼대며 나오던 어머니의 옆구리를 향해 아버지는 쏜살같이 발을 뻗었다. 사정을 두지 않은 발길질과 동시에 가냘픈 몸이 덤불처럼 쓰러졌다. 어머니의 연약한 몸은 축구로 단련된 단단하고 무거운 발길질을 받아내기엔 무리였다.

"가장이 들어오는 데, 퍼져서 잠만 자? 간이 단단히 부었네. 네 년이 뒈지려고 환장했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납게 노려보며 등허리 쪽으로 발길질을 시작하며 빈정거렸다. 순간적으로 낮은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명은 그만두고 소리 내는 것마저 안 된다고 생각한 간절한 내 기대를 어머니는 여지없이 배반했다.

"얼씨구! 아프다고 소리치면 어떤 새끼가 달려와서 냉큼 구해 줄 것 같으냐? 어림없는 생각이지. 네깐년이 뭐라고."

날아오는 발길을 견딜 수 없었던지, 어머니는 기다시피 구석으로 도망갔다. 아버지는 먹이를 향해 달려가는 배고픈 맹수와 흡사한 표정으로 천천히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번들거리며, 핏발선 눈은 평소와 달랐다. 잔인한 빛을 띄우고 있었고, 당장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마음이 조여 왔지만 나는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제발 무사히 이 밤이 지나갔으면 어머니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빌어 보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폭행의 강도가 증가할수록 어머니는 점차 얼빠진 사람이 되어 갔다.맞을 만큼의 오기와 배짱도 없이 고스란히 당하는 꼴이 형편없이 느껴져 화가 났다. 그렇다고 별 뾰족한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애꽃은 입술만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나는 눈이 찢어지게 아버지를 째려보았다. 아직 대항할 만한 힘이 내게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언젠가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왜 못살게 구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힘이 축적될 때에 뜨거운 맛을 보여 줄 것이라고, 나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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