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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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5
  • 김선옥
  • 승인 2023.08.19 07:37
  • 기사수정 2023-08-19 0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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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22-4에 이어)성은이를 만나고 나면 좀 달라질 것이었다. 쌓였던 분노도 어느 정도 가셔질 것이지만, 지금은 책상 앞에서 스스로를 억제하고, 공부가 끝난 다음에 어떻게 그 애를 요리할 것인지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타인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니, 그것도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성은이, 단발머리의 왜소한 체격의 그 애는 내 밥이다. 입학식장에서 첫눈에 그 애를 점찍었는데, 만만한 상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내 짐작은 맞았다. 성은이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상대였다.

아버지의 미친 광경을 목격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그 애를 호출했다. 누군가에게 울분을 풀어야 했으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평소에 눈여겨봐 두었던 곳으로 나는 그 애를 끌고 갔다. 끌려가는 동안 그 애는 도살장을 향하는 처량한 짐승처럼 굴었다. 공포를 가득 담은 눈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 애원하는데, 그럴수록 내겐 그 애가 형편없이 비굴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맞으면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아버지에게 면역이 되어 있는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더 화가 나서 심하게 때렸다. 실컷 구타한 후면 어느 정도 화가 풀리고,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바들거리며 떠는 그 애의 모습을 볼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때릴 때 전혀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애가 학교에 일러 바칠 리는 없을 것이고, 그렇더라도 학교에서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짱이 좋아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성적 위주로 돌아가는 학교에선 성적만 좋으면 웬만한 잘못은 쉬쉬하고 넘어갔다. 형편없는 집안 꼴에도 불구하고 내 성적은 다행스럽게 최상위층에 속했다. 성적이 좋으면 모범학생이란 학교의 잣대로 보건데 나는 아주 괜찮은 부류였다. 내가 어떻게 될까 봐 벌벌 떨 만큼 학교에서 나는 중요한 존재로 분류되어 있었다. 따라서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학교의 기준에 응답하기 위해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알량한 내 자존심과도 상관관계가 있고, 아버지를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상처 입은 아버지가 폭행의 방향을 내게 전환할지도 몰랐다. 뇌리에 박힌 공포로 인해 나는 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여전히 폭행은 계속되었다. 곧 끝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다른 날에 비해 아버지의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좋을 때가 없지만 이런 날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아무리 예민하게 살펴도 금세 돌변하는 기분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어 어머니도 마음 놓지 못할 것이었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몸을 사리는 것이 죽음을 겁내거나 두려워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맞아죽으면 개죽음이나 다름없다. 자포자기해서 시시하게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인 것이다. 계속 두들겨 패는 소리에 아버지가 점점 괴물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탈을 쓰고 나온 무시무시한 괴물. 괴물이 아버지로 둔갑했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혐오감과 증오가 불꽃처럼 솟구치며, 죽여 버리고 싶다는 느낌이 팽대해졌다. 하지만 참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복수를 꿈꾸며 나는 바스러지도록 주먹을 웅크려 쥐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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