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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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3
  • 김선옥
  • 승인 2023.08.17 10:37
  • 기사수정 2023-09-11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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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22-2에 이어) 아아악! 어머니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공을 차듯 벌어지는 소나기 같은 폭행 때문에 나는 통증을 느꼈다. 직접 당하는 느낌이었다. 뼈가 부서지는 듯 아프고, 꼬챙이로 가슴을 후비어 파는 극심한 통증에 문고리를 잡고, 몸을 웅크렸다. 이런 증상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심하게 폭행하거나, 거리에서 사람이 맞는 걸 목격할 때에도 느닷없이 나타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폭행 장면이 비쳐도 똑같은 발현하는 증상이었다. 폭행은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 단어가 몸서리치게 싫어 가능하다면 내인생의 사전에서 폭행을 깨끗이 삭제하고 싶었다.

제때에 아버지를 맞아들이지 못한 실수가 오늘 폭행의 빌미였다. 어머니는 새벽 세 시까지 기다리느라고 녹초가 되어 그만 깜박했다. 아버지의 귀가 시간은 종잡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 때문에 날마다 잠을 설쳤다. 아버지는 새벽이 끝날 즈음에 들어오기도 했고, 이른 시각인 초저녁에 들어오기도 했다. 때론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소리도 없이 살금살금 들어왔다. 아무리 긴장을 하고 있어도 아버지의 엉뚱한 행동을 예측하기는 곤란했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에는 일부러 외박하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귀가에 신경이 쓰여 어머니는 언제나 마음을 놓지못했다.

들쑥날쑥한 아버지의 귀가가 어머니를 조롱하기 위한 계획된 의도인듯 의심스럽지만 따질 수도 없었다. 기다림의 길고 지루한 시간 동안 어머니는 소파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자거나 아예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러면서 묵묵히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도 어쩌다 보면 그렇지 못한 날이 있고, 그런 날은 낚시 바늘에 걸린 영락없는 물고기 신세였다. 걸리는 날에는 온갖 수모를 당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긴장으로 심장이 오그라들고 조바심이 난다고 했다. 촉수를 예리하게 곤두세우고, 앞으로 당할지 모를 폭행을 떠올리는 참담한 기다림의 시간들을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피를 말리는 고통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고 피곤하게 하는지를.

"뭐라고 말대꾸라도 해 봐. 대꾸할 가치조차 없어서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는 거냐? 벙어리가 되었어? 왜 입을 다물어?"

아버지는 다른 것으로 시비를 걸었다. 생각나는 대로 꼬투리를 잡다가, 이번엔 침묵을 트집 잡을 심산인 듯했다. 말하라고 다그치는 것이말을 허락한 것은 아니다. 곧이들었다가는 여지없이 당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어 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한마디만 대꾸해도 더 큰 화를 자초했다. 예전에 모르고 더러 변명하다 호되게 맞은 경험이 많았다.폭행의 정당성을 찾는 아버지에겐 말대꾸도 호기였다. 대꾸하거나 반항할수록 강도가 심해지고, 시간이 연장되는 것을 간파한 어머니는 오산하는 어리석음을 다시 저지르지 않았다. 아무리 자극해도 죽은 듯 엎드려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 멈추기 때문에 기다리는 외에 묘안이나 방법은없었다.

도망치거나, 자리를 잠깐 피할 수 있었으나 그것 역시 헤어질 생각이아니라면 꿈도 꿀 수 없었다. 혼자 남겨질 나를 생각해서였다. 때릴 대상이 없으면 어머니는 대신에 내가 고통당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버지에겐 폭력의 상대가 필요하고 대안으로 나를 선택할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을 익히 알기에 어머니는 그저 참고 견디었다. 하루라도 빨리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죽음과도 같은 고통스런 지옥 생활을 헤어지지 못하고, 감내하였다. 어머니의 몸에 푸른 멍이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삶을 지켜보는 일이 나 역시 아팠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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