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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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4
  • 김선옥
  • 승인 2023.08.17 10:47
  • 기사수정 2023-08-17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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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22-3에 이어) “네 놈이 그래 봤자 꿈쩍이나 하겠느냐, 그렇게 생각하지? 이년이 날아주 우습게 아네. 좋아, 오늘 단단히 맛 좀 봐라."

무시한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로 아버지는 생트집을 잡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는 열등감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걸핏하면자존심을 내세우며 달달 볶는 것이 증오를 올바로 처리하지 못한 탓이라고 어렴풋 생각하지만 해도 너무했다.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어머니는 세세하게 알지 못했다. 가족들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라서, 어머니도 내가 아는 만큼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술에 취해 간헐적으로 끄집어낸 과거사, 술김에 뱉어 낸 것을 얻어들어 그것을 종합적으로 주섬주섬 꿰어 본 것이 그나마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 전부였다.

나의 아버지의 어머니, 얼굴도 본 적이 없는 내 할머니는 남편이 죽어 재가했다. 재가하면서 함께 데려간 아버지는 계부 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자랐다. 아버지의 계부는 심한 술주정꾼이었다. 화나는 일이 있으면 손에 잡히는 물건을 집어던지고, 사람을 때렸다. 계부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와 나이가 꽤 차이가 나는 이복형들도 계부를 닮아 성격이 거칠고 난폭했다. 동네에서도 소문난 망나니들이어서 아버지는 새로운 가족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다. 본디 성격이 여리고, 무서움을 잘타는 편인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만만하게 보였던지 계부나 형들은 이유없이 아버지를 구타했다. 적응하지 못하고 잔뜩 주눅이 든 아버지는 도망을 가고 싶었지만 잡으면 죽여 버린다는 협박에 달아날 엄두도 못 냈다. 끔찍한 시절이었다.

다행스럽게 할머니의 죽음으로 그들은 눈엣가시 같은 아버지를 쫓아냈다. 아버지는 그들과의 관계를 끝장내고 사촌들이 있는 백부 댁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백부 댁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사촌들이 놀 때 일했고, 모두 잠을 잘 때 일어나 공부했다. 한시도 편안하게 누워서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이복형이나 사촌들에 관해서 말할 때면 아버지는 진저리치며 이를 갈았다. 옛날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이 당장옆에 있기라도 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날, 늘어진 어깨로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 문 아버지를 볼 때면 나는 측은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는 깜깜한 터널을 통과하듯 무섭고 두려워하면서 어린 시절을 지나왔을 것이다. 과거의 쓰라린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망령에 붙들려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도 가슴이 아팠다. 그렇더라도 아버지가 벌이는 야비하고 치졸한 행동들을 눈감거나 용서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무엇을 지키려고, 아내를 그처럼 힘들게 하는가. 일생을 함께 살기로 언약한 아내를 학대하며,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자신을 감당하기 어렵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용납할수는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발길질과 주먹질, 이어지는 비명 소리와 신음소리가 뒤섞여 들렸지만 문틈에서 눈을 떼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조금후면 폭행이 끝날 것이므로, 마음을 안정하고, 앉아서 공부에 몰두하기로 했다. 책을 펴들었다. 끔찍한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유일하게 공부뿐이라는 것에 화가 났다. 책 속으로 피신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방관자인 못난 내 모습에 미칠 지경이었다.울분이 쏟아져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공부로 화를 다스려야 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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