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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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퍼즐게임 22-6
  • 김선옥
  • 승인 2023.08.25 08:21
  • 기사수정 2023-08-25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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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22-5에 이어) 그 시기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나는 틀림없이 복수할 것이다. 나는 몇번이고 다짐했다. 어머니가 무수하게 당한 폭행과, 내가 겪은 정신적인 고통도 깡그리 되돌려 주며, 은밀하고 감쪽같이 해내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전혀 눈치챌 수 없어도, 아버지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복수의 방법이 어디 없을까, 증거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고 시원하게 처리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나는 이를 악물고 궁리했다. 아버지가 미친개처럼 굴어도 그때까지 잘 견뎌 주기를 기도하며 복수를 계획하였다. 그대로 둔다면 어머니도 언젠가는 동생처럼 죽을지도 몰랐다.

사실, 내겐 동생이 없다. 동생이 생길 기회가 있었지만 잔혹한 아버지때문에 기회를 잃었다. 동생이 살았다면 나와 두 살 터울이다. 동생이 생겼을 때도 아버지는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된 구타에 심신이 쇠약해진 어머니는 동생을 감당할 수 없었다.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뱃속에서 숨을 거둔 동생은 사 개월째여서 형체가 보였다. 아들이었다고 했다. 자연유산이라고 입을 다물었지만 따지고 보면 폭행의 결과가 분명했다. 어쩌면 뱃속의 아이가 미리 삶을 포기해 버렸는지도 몰랐다. 짐승 같은 인간과 한 지붕 밑에서 산다는 게 구차하다고 생각하여 먼저 삶의 끈을 놓아 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유산의 후유증으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후로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것마저도 폭행의 빌미로 삼았다. 잃은 동생을 생각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함께 머리를 짜내면 구체적인 반란을 계획할 수도 있을 텐데 싶어서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미친 짓에 사라진 동생에 대해 아버지는 당연히 죄인이었다. 아들을 살해한 비정한 아버지, 짐승만도 못한 인간쓰레기였다. 하지만 세상은 아버지를 단죄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비극적으로 죽은 동생을 위해 신의 은총만을 기도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주위가 잠잠해졌다. 책상에서 일어나 살그머니 문틈으로 다가가 밖의 동정을 살폈다. 어머니는 몸이 쑤시는지 손으로 이곳저곳 주무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아 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애써 기운을 내고, 몸을 추스르는 모습이었다. 눈물이 팽 돌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어머니의 표정에서 혼이 다 빠져나가고 빈껍데기만 남아 있는 느낌이 전해 왔다. 너무나 지쳐서 이제는 살고 싶지않은 표정으로 그만 죽어 버리고 싶다는 느낌인 어머니가 갑자기 두렵고 무서웠다.

가슴이 다시 답답해져 왔다.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었다. 뭐든지 왕창 때려 부수고 고함을 지르고,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 드는지 그래서 그렇게 난리를 피우는 것인지도 몰랐다. 요란하던 광기가 멈춘 것으로 보아 아버지도 기진한 모양이었다. 지쳐 포기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웅크린 자세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어머니도 조심스럽게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아버지가 보이는지를 살피며 서서히 움직이지만 언제 불쑥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태도는 지극히 신중했다.

어머니는 일어서서 한참 동안 선 자세로 가만히 있다가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섰는지 비로소 허리를 폈다. 허리에 발길을 심하게 받았던 모양으로 동작이 굼뜨고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간신히 편 허리만이 아니라 어느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었다. 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어머니의 몸, 여기저기 시퍼렇게 피멍울이 들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숨을 죽이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얼굴을 씻고,흐트러진 머리를 빗고, 거울을 통해 얼굴을 보며, 겉으로 표가 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고등학생인 내게 참담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기를 쓰는 일련의 상황들이 아무리 감추어도 감추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잊은 모양이었다. 집안이 시끄럽도록 난리를 피워 대는데, 방문을 잠근다고 어떻게 감추어지겠는가. 어머니는 그런데도 되도록 감추었다. 처참한 상황들은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할 당시부터 나는 다 알게 되었다. 그런대도 잘못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어머니를 위해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어머니가 유일한 희망인 내게 숨기려고 해서 그저 잠자코 있었다.(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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