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13
상태바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13
  • 김선옥
  • 승인 2023.08.04 21:37
  • 기사수정 2023-08-04 2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12에 이어)남편의 죽음처럼 그들의 죽음 또한 고의가 아니었음에도 유림은 그들이 밉다. 딸에게 힘겨운 짐을 송두리째 떠맡기고 가 버린 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원망스럽다. 동생들도 은근히 미워진다. 그녀도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을 것이다. 동생들만 아니라면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어린 동생들이 있어 꼼짝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녀의 입장으로서는 자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란 나무와 같아서 뿌리가 튼튼하면 폭풍이 치고, 거센 눈보라가 휘날려도 끄떡없다. 견고한 뿌리를 지닌 나무는 어떤 험한 날씨에도 잘 견딜수 있을 것이다. 유림은 딸을 위해 그런 든든한 나무가 되고 싶다.

"안녕하세요? 저, 이유림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럼 결정하셨습니까?"

정 박사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대뜸 결정했느냐고 물었다. 대학 때의 스승인 정 교수의 동생인 그를 얼마 전에 소개받았다. 그는 심장병 전문의인데 그 방면의 수술로는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결정했는데 아직 본인에게는 말을 못했어요.”

"그런 좋은 일을 왜 망설이십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환자를 보내십시오, 모든 문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를 만난 자리에서 유림은 그녀의 동생이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해 상의했다. 자세히 들은 정 박사는 되도록 빠른 시간에 환자를 보내라고 말했다. 그는 불쌍한 소녀가장을 위해 부탁하는 것으로 알아서인지 아주 적극적이었다. 딸을 찾기까지의 어려움보다도 유림은 그런 이야기를해야 하는 일이 더 어렵다. 유림의 도움을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곤혹스러운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은 기필코 정 박사의 말을 전해야한다. 망설이다가 시기를 놓칠 수가 있으므로 곤혹스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녀는 호의를 거절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아직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했으니 제안을 거절할 여지가 없다. 심장수술분야에서 권위자인 정 박사의 진료는 행운이다. 그녀로서도 그런 좋은 제안을 쉽게 뿌리칠 수 없을 것이다. 수술을 주선해 준다고 해서 아픈 동생을 미끼로 그녀에게 쉽게 존재를 드러낼 생각은 없다. 아직은 접목이 가능한 시기가 아니다. 유림은 그저 돈 많고 선행을 베푸는 이웃의 약사로 그녀에게 다가설 생각이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마음의 준비가 된다면 어느 날 아침, 지나가는 그녀를 불러 세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퇴근하는 그녀를 붙들어 말할 수도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면 오랫동안 입 다물고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들을 뒤에서 찾기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머릿속이 뒤숭숭해서 그런 어려운 것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가슴이 설렌다.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괜스레 웃음이 실실 나온다. 경쾌한 휘파람이라도 불며 누구에게나 상냥해지고 싶은 기분이다. 그러다가도 땅거미가 지는 저녁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조바심이 난다.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는 유림에게 시간은 길고 지루하다.(끝)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