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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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12
  • 김선옥
  • 승인 2023.07.29 08:12
  • 기사수정 2023-07-29 0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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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11에 이어)유림은 그녀의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가슴이 아파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가는 그녀에 대한 애처로움과 연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더라면 딸의 어깨에 얹어진 짐을 다소 덜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날, 유림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오랜 시간 오열했다. 그녀는 그런 유림의 흐느낌을 아마 짐작도 못할 것이다.

유림은 죽을 때까지 그녀에게 죄인이다. 그녀를 생각하면 죄책감과 함께 깊은 곳으로 침잠해 가는 느낌에 고개를 떨어뜨린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원망할 수는 없다. 당신의 불행을 딸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머니도 당신의 핏줄을 버리는 것이 무척이나 가슴이 미어졌으리라. 미혼의 딸보다 행복한 가정에 입양되어 살게 하는 방법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약국의 진열대 뒤에 놓인 의자에 앉아 오래전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오로지 자살만 생각했던 어두운 기간들이 뇌속을 온통 뒤헝클어 놓는다. 유림은 진열대 뒤에 앉아 그녀가 아니, 딸이 퇴근하는 그 시간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위해 산란한 마음을 평온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약을 팔거나, 거래하는 제약회사 사람들을 맞는 외에 별다른 일은 없다.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챙겨 줄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개인적인 방문객은 거의 없다. 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드문 편이다. 방문객도 없고, 전화도 없을 때면 유림은 테이블에 책을 펴놓고 읽기 시작한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 유림은 어떻게 그녀에게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궁리한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유림의 삶에 접목하는 상황이 힘들었듯 그녀와의 접목을 시도하는 일 또한 어렵고 힘들 것 같다. 그녀 앞에 나타나 생모임을 밝힌다면 그녀가 유림을 인정해 줄까. 어림도 없다. 아마도 정신이 어떻게 된, 돌아버린 여자로 취급할 것이 뻔하다. 구체적인 설명을해 주어도 인정하기에는 공백이 너무 크다. 이십오 년의 세월 동안 공유한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모르지만 두 사람에겐 그런 시간이 전혀 없었다. 아무런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한 타인의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고,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용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림의 고민은 바로 그것이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보던 책을 덮어 놓고 의자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가 유리를 통해 거리를 본다. 안개가 걷힌 거리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훤히 드러내 보인다. 조금 있으면 그녀의 동생들이 등교하기 위해 길을 걸어올 것이다. 큰 동생은 중학생이고, 심장병을 앓고 있는 작은동생은 초등학생이다. 동생들이 그녀와 나이가 많이 차이 나는 이유는 부모들이 뒤늦게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양부모는 친자식이 생겼어도 그녀를 버리지 않고 키웠다. 그녀 덕에 복을 받아 아이를 얻었다고 여겼으리라. 그런 착한 마음의 그분들이 일찍 죽은 것이 정말 유감이다. 흥신소의 직원은 그분들이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사망했다고 전했다. 교통사고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쳐진다. 사고 소식만으로도 골이 아파 사고 화면이 비추거나 드라마 중간에라도 그런 장면이 있으면 보지않으려고 재빨리 화면을 꺼 버린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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