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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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3
  • 김선옥
  • 승인 2023.06.03 06:08
  • 기사수정 2023-06-03 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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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2에 이어)그런데도 유림을 팔자 더러운 년으로 단죄하고 시집의 울타리에서 쫓아냈다. 그들이 열아홉의 흔적을 뒤적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쫓아내는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멱살을 잡거나 머리채를 거머쥐고 거리를 활보하지 않았을 뿐이지 시집이 취한 행동은 조롱이나 다름없어 곤혹스러웠다.

남편의 기일이 며칠 전에 있었다. 시집의 일에 참석할 수 없었으므로 유림은 혼자서 기일을 보냈다. 시집에선 제사상이라도 올리는지 모르겠다. 궁금한 것은 아니다. 시집에서야 어떻든 유림은 나름대로 기일을 챙긴다. 그가 떠난 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던 동안에는 사위를 위해 손수 음식을 장만했다. 혼자인 지금은 유림의 방식대로 간단하게 지낸다. 평소에 그가 좋아했던 소주와 파전을 놓고 향을 피우며 그를 생각한다. 이번에도 파전 만드는 집에다 특별한 파전을 주문했다. 유림은 항상 기일 얼마 전에 파전 잘 만드는 집을 수소문해 놓는다. 그래야 기일에 맞추어 주문할 수 있다. 사소한 절차지만 유림 나름의 마음을 안정하기 위한 방법이다.

약국의 문을 잠근 뒤, 파전을 찾으러 갔다. 유림이 나이 또래의 주인은 늦은 밤에 파전을 사러 오는 게 이상했던지 일손을 놓고 한참 동안 살폈다. 유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남편을 위해 파전이 필요하다는 말, 기일이란 말은 더더구나 할 수가 없었다. 정성이 배이지 않은 음식으로 제사를 지낸다면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지만 구태여 구차한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

파전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편의점에 들러, 소주 한 병을 샀다. 그곳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계산대에 올려놓은 소주와 유림의 얼굴을 그는 야릇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늦은 밤에 소주를 사는 나이 든 여자가 궁금한 것인지, 나이 든 여자가 소주를 사는 것이 궁금해서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도 비닐봉투에 담아 주는 소주값을 계산한 후 물건을 들고, 말없이 나왔다. 혼자살면서 이상한 시선에 부딪혔던 적이 많았다. 덕분에 이젠 모든 것에 초연해지고 미소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여유가 생기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흘렀지만 어찌 되었든 귀하게 터득한 소중한 철학이다.

사들고 온 파전을 사진과 함께 상 위에 올려놓고 소주 한 잔을 따르는 것으로 조촐한 추모의식을 지냈다. 쓸쓸한 제사지만 그가 이해해 줄것이라고 생각했다. 촛불에 어른거리는 사진 속의 그가 언뜻 웃은 것 같아 눈물이 팽그르르 돌았지만 애써 울음을 삼켰다. 그는 생전에 유림이 울면 지나치게 싫어했으므로 우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하긴 그가 웃었다고 느낀 것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사진 속의 그가 웃었겠는가.

“우루사하고 드링크제 한 병 주세요."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의 주문이다. 컬컬한 목소리가 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는 유림을 깨운다.

눈을 들어 진열대 앞에 서 있는 손님을 쳐다본다. 아침마다 약국 앞을 지나는 사람으로 근처의 임대 아파트에 살며 동갑인 아내가 있다는 남자다. 결혼식도 못하고 사는 주제에 술만 퍼마신다고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다고 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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