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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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10
  • 김선옥
  • 승인 2023.07.15 00:02
  • 기사수정 2023-07-15 0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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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9에 이어)어머니의 생각은 옳았다. 아이는 유림에게 생존의 의지와 소망을 주었다. 아이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 유림은 무기력의 늪에서 탈출했다. 자신도 모르게 강한 삶의 의지가 강하게 생겨났고, 계기가 되어 더디기는 했지만 점차 회복의 기미를 보였다. 유림은 꿈에서 가끔 아이를 보았다. 형체가 없는 아이는 홀연히 나타나 손짓하며, 미소 짓고, 유림을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머니는 건강을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병환 중에 심신이 무리했던 탓에 건강이 더욱 나빠져서 유림이 완전하게 치유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유림은 혼자 사는 동안 가슴앓이를 지병으로 가지고 있던 어머니를 더욱 쇠약하게 만들었던 셈이다. 생각하면 유림은 천하의몹쓸 불효녀다.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그래서 지금도 납덩이를 안은 것처럼 무겁다. 아픔이 짓눌러 올수록 유림은 스스로를 강하게 단련하며 그것이 어머니의 뜻일 것이라고 믿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림은 위기감을 느꼈다. 돌보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홀로 서 있지 않으면 쓰러지고 말 처지였다. 딸도 유림이 쓰러지기를 원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유림을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누구도 도울 수가 없었다. 유림을 돌볼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었으니 스스로 일어나야 했다.

절박한 위기감이 밀려오자 그동안 유림을 사로잡던 무기력하고 안일하던 마음이 사라진 동시에 더딘 회복을 보이던 몸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세상과 격리되어 죽음을 꿈꾸던 의식 속으로 어머니의 죽음과 얼굴도 보지 못한 딸이 생존의 이유에 강하게 작용했다. 일어나지 못하면 아이를 영영 만날 수 없을 것이고, 아이를 만나 어머니의 의무를 가지려면 살아야 했다. 버렸던 아이를 위해 뭔가 해 주려고 생각한다면 우선 살아야 했다.유림은 그 의식의 끈을 붙잡고, 서서히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추스르고,일어나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기까지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도 거의 이년의 기간이 걸렸다. 오랜 세월을 허비한 후에야 유림은 비로소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아왔다.

세월의 공백은 참으로 컸다. 어머니와 함께 쌓아 올린 삶의 터전이 그동안 허물어졌고, 모든 것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어머니가 살던 가게 뿐이었다. 그거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시집 식구들은 건질 것이 없는 유림에게 여전히 적대적이었으므로 집을 처분하여 연고가 없는 곳을 택했다. 그들과 마주 대하다가 다시 자신을 파괴할지도 몰라 유림은 주변을 정리하고, 이사했다. 본 적도 없는 딸이 그들을 무시하고 살아야 한다고 유림을 부추겼다.

낯선 곳에서 약국을 개업하여 유림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면허가 기틀이 되어 허공중으로 자꾸만 떠돌려는 삶을 뿌리내릴 수 있게도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유림은 무던히 노력했고, 이제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어쩌다 거리에서 시집 식구의 누군가와 만나더라도 부담이 없다. 무심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어 거리를 지나다가 시집의 식구들과 우연히 부딪치거나 시선을 마주쳐도 모르는 남남처럼 태연할 수 있다. 그렇게 된 일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약국은 잘 되었고, 유림은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혼자서 사는 데 돈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버는 돈을 쓸 시간도 없고, 사실 별다르게 쓸 곳도 없었다. 병원에서 벗어난 후로 쉬지 않고 일하느라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돈은 자꾸 덩치를 부풀려 통장의 액수를 불려 유림도 깜짝 놀랄 만큼 많아졌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도, 상처로 남은 아픈 기억도, 그동안은 일부러 잊고 살았다. 티눈처럼 아픈 열아홉 나이의 어두움이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었는데도 그것들을 나중으로 미루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유림에겐 쉴 수 있는 생활의 여유가 생겼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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