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11
상태바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11
  • 김선옥
  • 승인 2023.07.22 06:20
  • 기사수정 2023-07-22 0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10에 이어)얼마 전에 유림은 열아홉의 박제된 기억을 떠올렸다. 생활의 여유와 함께 솟구쳐 올라온 기억들이 내내 혹처럼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떨어질줄 모르는 어두운 기억은 의식의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냈다. 유림은 기억 속의 실체를 찾기 위해 오랜 여정을 했고,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드디어 이곳에서 종착지를 찾았다.

그동안 유림은 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일부러 질질 끌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게 소극적이었다. 유림의 조바심에 비례해서 더디고 느렸던 행보는 찾기가 너무 힘들어 그만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앙탈까지 부렸다. 진척이 느려터진 그때마다 유림은 애원하다시피 매달렸다. 그들이 아니면 딸의 소식을 영영 듣지 못하게 될까 봐 유림은 두려워서 원하는 요구대로 응해주며 사정하곤 하였다.

유림은 석 달 전에야 가까스로 딸을 찾았다. 숨은 그림 찾기에서 숨어 있던 그녀를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찾아낸 딸에게 유림은 집착을 가지게 될까 봐 두렵다. 어쩌면 이미 그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숨겨서 무엇 하겠는가. 어느 정도 짐작하겠지만, 아침마다 유림이 기다리며, 훔쳐보는 그녀가 바로 딸이다. 정확한 시간에 유림이 서성이고 있는 약국 앞을 어김없이 지나가는 그녀, 하지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유림의 딸은 하지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올해 스물다섯 살이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 그녀를 보면서도 유림은 말조차 걸어 보지 못했다. 그녀 또한 유림이 생모임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생모가 있는지 조차도 모를 것이다. 유림이 말하지 않으면 그녀는 끝내 모를 것이다.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가끔 안달이 난다.

'내가 바로 네 엄마다. 너를 배 아파 낳은 사람이야.'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속이 탄다. 아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몰래 훔쳐보고 있으면서도 아직 말하지 못했다. 유림에겐 그녀를 훔쳐보는 것이 어느 틈에 유일한 삶의 일과 중 하나이고, 기쁨이다. 숨어서 그녀를 훔쳐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불행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그녀는 싱싱하고 상큼한 아가씨다. 유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호감을 느낄 수 있는 괜찮은 아가씨다. 그렇지만 또래의 평범한 아가씨들처럼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에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그녀에게는 어려움과 고통이 많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어 유림은 가슴이 아리다. 딸을 찾아낸 이후로 유림은 그녀의 뒷조사를 해 왔다.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그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어렵게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큰 문제점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체육 시간에 막내가 달리기를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서 동생은 심장병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병이 있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렇게 빨리 수술해야 하게 될 줄은 몰랐던 듯싶다. 그래서인지 최근 그녀의 얼굴에는 근심이 서려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의 직장에서는 구조조정이 있을 예정이다. 그녀도 언제 해고 통지서를 받게 될지 모를 아슬아슬한 상황이어서 더 그럴 것이다. 지금이 그녀에게는 최대의 난관이다.

그녀는 지금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유림이 알고 있기로 주위에 도움을 줄 마땅한 사람은 없다. 일찍 부모를 잃은 그녀는 남은 두 동생에 대한 책임을 떠맡았다.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포기했던 모양이라고 전하던 흥신소의 직원은 유림의 눈치를 살폈다. 야간 여상을 끝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녀는 다행히 학교의 추천으로 은행에 취직되어 동생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부모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계속하여 동생들의 뒷바라지로 고생하는 그녀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