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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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8
  • 김선옥
  • 승인 2023.07.01 08:08
  • 기사수정 2023-07-01 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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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7에 이어)두 사람의 결혼식은 무사히 치러졌다. 평범한 결혼식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축하객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혼인서약서에 서명하고, 하객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비로소 밝히지만 당시에도 유림은 솔직히 결혼에 아무런 감흥이나 긴장감이 없었다. 기간이 너무 짧아 감정적으로 다가설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익숙해질 시간이 없었던 데다 결혼식을 치루고 한 달도 못되어 그가 죽음의 길로 향했으니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기엔 무리였다.

하지만 가끔은 그에 대한 애정이 절실하게 없어서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현란한 청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유림을 돌보지 않고, 험난한 세상에 혼자 남겨 두고 먼저 떠난 것이다. 나중에 다른 세상에서 만나게되면,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그에게 꼬치꼬치 따질 생각이다.

남편에 대한 좋은 기억에도 불구하고, 시집에 맺힌 한은 풀어지지 않는다. 남편의 죽음으로 꽤 많은 보상금이 지급되었는데 유림에게는 한푼도 주지 않았다. 그들이 보상금을 모두 가져간 것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문서로 확인한다면 유림은 남편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렇더라도 이해를 구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억지일지 모르지만 유림이 함께 죽었다면 그들은 일부러 결혼을 확인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더 많은 보상금을 탈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돈에 대한 시집의 처사를 안 이후, 유림은 세상이 무섭고 끔찍했다. 그까짓 돈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유림은 당연한 몫의 보상금에도 시집이 욕심을 보였기 때문에 모른 척했다. 혼인신고는 되어 있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그와 결혼했고, 엄연한 아내였으며 증명할 결혼식 사진들과 증인들이 많았지만 시집이 처사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악담을 동원하여 욕하고, 찢고, 씹어 대는 말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기를 써도, 여기저기서 들려온 말들이 상처를 주었다.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적이 될 수는 없었다. 사람의 인연을 냉정하게 잘라 낼 수는 없는데 시집에선 돈과 연관하여 심사를 어지럽히는 일들을 벌였다.

지금은 시집의 아무하고도 상종하지 않지만, 처음에는 그게 무척 힘들었다. 전화기 울리는 소리만 들려도 깜짝 놀랐다. 시집의 누군가가 욕설을 퍼붓기 위해 건 전화인가 싶어 머리칼이 쭈뼛 곤두섰다. 밖에 나가는 일도 두려웠다. 모두가 유림을 향해 남편 죽인 년이라고 손가락질을해대는 것 같았다. 잠을 자는 일도 힘들었다. 시집 식구들은 꿈속에서까지 유림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유림이 죽어 없어져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어느 때는 신경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져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을 만큼 극심한 우울증과 피해의식에 빠져들었다.

여리고 섬세한 유림은 헌신적인 어머니를 뿌리칠 수 없어 죽음도 마음대로 감행하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던 탓에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지못한 대신 유림은 무의식 속으로 침잠했다. 그 속으로 숨고, 안주하여 세상과 담을 쌓았다. 무력감에 젖어 하루 종일 인형처럼 앉아 있거나, 망연히 방바닥을 들여다보곤 했다.

유림은 창문을 전부 닫아걸고 지냈다. 죽은 듯 며칠을 잠만 자거나 구석에 웅크린 자세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표정은 로봇처럼 딱딱하게 굳었고, 예전의 싱싱함을 잃었다. 마지못해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나날이었다. 유림은 스스로가 황폐해지기를 바랐고, 자연스레 죽음이 덮쳐 오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그런 상태를 마주 보면서 무척 힘들어했다. 유림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에 슬퍼했고, 간호하는 일에도 지쳐갔다. 유림의 건강이 나아질 기미가 없자 보살피는 어머니도 점점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점점 악화되는 유림의 상황에 의지로 버티던 어머니의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졌다. 폐허나 다름없는 유림의 마음을 다독이며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 때까지 보살피지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죽기 얼마 전에 그동안 지니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았다.(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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