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9
상태바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9
  • 김선옥
  • 승인 2023.07.08 06:28
  • 기사수정 2023-07-08 0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8에 이어) “유림아,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 아이를 찾아야 하니까."

아직도 온전히 정신을 추스르지 못하는 유림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유림이 건강했다면 어머니는 비밀을 무덤까지 안고 갔을 것이다. 아이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는 유림에게 과거의 상처 속에 또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로 도사리고 있다.

아이의 이야기, 이제는 그 이야기를 해야 할 시간이다. 가슴속에 깊이담아 두었던 비밀을 꺼냈던 것은 어머니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그 아이는 죽지 않았어. 지금도 살아 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했던 일, 거지 같은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유림에겐 아이가 생겼다.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아이를 없애려고 했을 때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 의사는 아이를 유산시키다가는 자칫 산모의 목숨도 위험하다고 했다. 유림은 할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아이를 몸 안에 키울 수밖에 없었고, 출산할 즈음에 병가를 내어 학교를 쉬었다.

어머니의 배려로 낯선 도시의 변두리 병원에서 몸을 풀었다. 초산이었고 정신적으로 심하게 불안했던 때문인지 아이를 낳은 즉시, 유림은 정신을 잃었다. 아이가 죽었다고, 너무 진통을 오래했던 모양이라고, 유림이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조금 슬펐지만 유림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한편으론 홀가분한 느낌이기도 했다. 죄책감은 있었으나 원했던 아이가 아니어서 아이를 위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유림은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이에 대해 다시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죽은 줄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살아있다고 했다.

"그때 네게 거짓말했어. 아이가 죽었다고, 아이는 틀림없이 살아 있다.그러니 이렇게 정신을 잃고 있으면 안 돼. 어떻게든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나야 네 아이를 찾을 수 있지 알겠니? 아이를 찾으려면 우선 네가 건강해야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어머니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아이가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니, 놀라운 소리였다. 열아홉 시절에 강제로 키워 왔던 아이, 죽었다던 아이였다. 믿을 수 없지만 어머니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어머니도 숨기려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의 아픈 상처를 덧나지 않게 하려고 아이의 생존을 일부러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고, 딸의 행복을 간절히 원했던 어머니의 배려였다고 유림은 생각한다. 어머니가 아이의 생존을 알릴 결심에는 유림의 절망적 삶에 의지를 주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존재가 딸을 채찍질할 것이고, 삶의 벼랑 끝에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자식으로 인해 살았던 것처럼 유림도 그러기를 바랐던 것이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