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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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7
  • 김선옥
  • 승인 2023.06.24 09:06
  • 기사수정 2023-06-24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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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6에 이어) "종종 알 수 없는 운명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어요. 뭔가 잘못되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요. 나는 운명론자거든요.”

이야기 끝에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른 때와 다르게 그의 표정이 진지했다. 유림은 놀라지 않았다. 그도 남자이므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떠나는 일만 남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헤어질 시간이란 말을 꺼내지 않았으므로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게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그가 침묵 끝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유림을 쳐다보았다.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나는 과거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혀 개의치 않아요. 그땐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겠지요. 어린 나이였으니까요. 유림 씨가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대처할 방법은 없었을 겁니다."

침착하고 정돈된 목소리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들이 나쁜 겁니다. 당한 사람은 잘못이 없어요. 무슨 잘못이 있다고 죄의식을 가집니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요."

과거는 상관이 없다는 말투로 그는 유림을 위로했다. 같은 남자로서 수치스럽고 가슴 아프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남자인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그렇다고 청혼을 철회할 수는 없어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 따위로 청혼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유림 씨는 바보예요. 바보가 나는 좋습니다. 나와 결혼하는 것은 보험이나 마찬가지니까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는 웃으면서 강조했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유림을 다독이며 되도록 편안하게 해 주려 애를 써 주며 이어진 말에 가슴이 따끔거렸다.

"유림의 인생에 내 자신을 투자하죠. 어떻습니까?"

환심을 사려고 했던 제안이었는지 모른다.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그에게 유림도 마음이 흔들렸던 것일 수도 있다. 그의 말을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그런 것들은 던져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결혼을 결정한 이유에는 보험과 투자라는 말이 제일 크게 약효를 발휘했다.

그가 청혼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어머니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였다. 유림은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얼굴을 그때 처음 보았다. 어머니도 그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에 그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알게 된 지 두 달 만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시집에서는 유림이 넝쿨째 들어온 호박이었으므로 열렬히 환영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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