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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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10
  • 김선옥
  • 승인 2023.05.05 06:50
  • 기사수정 2023-05-05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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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9에 이어)외삼촌에게는 정말 황홀하고 아름다운 세상이었을 것이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 해와 달과 비와 바람 같은 그런 것들, 산과 들과 꽃과 나무들,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그런 것들을 자유롭게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감동했었을까. 그것들이 얼마나 벅차고 신기하기까지 했었을까. 그랬는데, 토막토막 부서져서 고막에 윙윙거리는 마지막 말의 허망함 때문에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외삼촌의 방에도 해열의 방에도 밤 동안 내내 불이 켜져 있었다.

해나야."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던지 어머니가 그녀를 흔들었다. 깨어 있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녀는 잠에서 막 깨어나는 것처럼 눈을 부스스 떴다.

"나 일하러 나갈 시간이다. 밥솥에 쌀 씻어 놓았으니 일어나면 외삼촌 식사 살펴드리고 해열이 학교에 늦지 않도록 깨워라. 싱크대 밑 지갑에 돈 넣어 놓았다. 필요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 알아서 준비해 주고, 식사마치면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실 테니 외삼촌 모시고 한 바퀴 돌던지.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미루어서 미안하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상했다. 말하는 걸 보니 외삼촌이 새벽에 밖으로 나간 일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구태여 말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깜박 잊을 뻔했는데 해열이 좀 잘 챙겨라. 제발 데모하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요즘 그 애 눈치가 이상해. 알아듣도록 말해도 내 말은 귓전으로 흘리는 것 같더라."

"알았어요“

”잘 살펴보고 데모꾼들하고 어울리지 않게 꼭 다짐을 받어. 무시하는건지 어미 말은 귓전으로도 안 들으니 원. 내 말은 안 들어도 누나 말은 잘 듣는 애니까 잘 타일러 봐. 그런데는 얼씬도 못하게.”

해열에 대해 다짐하는 마지막 말에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자신의 고통스런 삶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가슴 깊은 곳엔 피 흘리는 상처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파래처럼 늘어져 밤늦게 돌아오고 새벽에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나가느라 매사에 담담할 것 같은데도 어느 순간 팔자타령과 함께 도사리고 있던 상처를 슬쩍슬쩍 내보이며 어머니는 서럽게 울곤 했다. 위로한다고 치유될 수도 없는 해묵은 상처였으므로 그런 때마다 그녀는 모른 척했다.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알코올중독인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두 남매를 키웠다. 억센 친정어머니의 해소 기침 소리를 들으며 종신형이 선고된 유일한 피붙이의 옥바라지를 감당해야 할 책임마저 떠안았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나간 후면 해열이 차례였다. 그는 차 시간을 맞추어 일어났다. 오전 강의가 없는 날이라고 해서 일찍 일어나 나가거나 집안일을 돕는 법도 없었다. 그는 내내 제 방에 틀어 박혀 잠을 자다가 정확히 시간을 따져 일어나선 부랴부랴 밥을 먹고 허둥대며 달려 나갔다. 그의 허둥댐은 집안의 유일한 활기였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조심스러웠다. 해열은 조용하게 식탁 앞에 앉아 차려 준 밥을 말없이 먹었다. 밥을 먹는 동안 생각에 잠긴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당부를 상기했지만해열에게 말할 마땅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녀올게."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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