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1
상태바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1
  • 김선옥
  • 승인 2023.03.11 06:16
  • 기사수정 2023-06-15 0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새벽 4시.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소리는 그녀의 방 앞을 지나 현관으로 사라졌다.

누구일까.

이른 새벽에 나갈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현관으로 향한 창문의 커튼을 젖히고 밖을 보았다.

현관에 서 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외삼촌이었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터무니없이 커서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같은 차림으로 그곳에 서있었다. 헐렁한 회색 양복은 손질이 잘 되어 있었지만 어쩐지 꼬깃꼬깃한 인상을 주었다.

어머니가 마련해 준 그 옷은 그에게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눈대중으로 어림했던 탓에 몸에 맞지 않기도 했겠지만 그런 옷을 입어 본 적이 하도 오래되었기에 어색한 것일지도 몰랐다.

외삼촌이 집에 온 것은 어제의 일이었다. 그는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외할머니가 살아 계셨더라면 어땠을까.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행복한 방문객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인생이란 밝고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고 느끼게 했으며, 거대한 조직 앞에서 개인의 존재가 얼마나 무력하고 하잘것 없는가를 보여 준 실체이기도 했다

동란이란 민족의 비극이기도 했지만 외삼촌에게 있어서도 비극이었다.

국가가 그를 간첩이란 덫으로 사로잡았을 때부터 드라마처럼 펼쳐진 그의 운명은 시작되었다. 불가항력으로 간첩이 된 순간부터 불행은 경고도 없이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의 수렁 속으로 외삼촌을 끌고 들어갔다.

간첩이란 죄목은 청천벽력이었으나 그는 결코 간첩이란 누명을 벗을 수가 없었다. 끈질기게 호소하고 탄원하고,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음에도 국가는 죄명을 벗겨 주지 않았다. 국가와의 한판 승부에서 개인이 이길 수는 없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에 불과한 그 상황은 이미 질 수밖에 없도록 정해진 게임이었다.

국가는 그에게 저항의 무모함을 인식시켰고, 죄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형량을 가볍게 할 수 있다고 유혹했다.

탈진 상태에 이른 그는 결국 무릎을 꿇었고, 타협이 불가피함을 시인했다.

그랬다. 그 게임은 결코 온당한 게임이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한편을 향해 펀치를 날리는 식이었으니까.

그런데도 국가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패했다는 것을 시인한 순간 국가는 그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다. 자유와 권리와 의무, 그리고 그의 젊음과 웃음소리와 행복. 그 모든 것을 차례로 빼앗았다.

그런 후에 그를 차디차고 음습한 감옥에 처박았다. 그때부터 그의 생은 고통과 절망으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런 아들을 기다리며 외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연소하였다.

그녀는 그런 노인네와 아들 사이에 있었다. 글씨를 알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러했다.

'신권아 보아라.' 로 시작되는 길고 긴 문장들을 그녀는 문맹인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대신하여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숨과 신세타령과 분노와 슬픔, 때론 그리움과 아픔의 감정을 그녀는 낱말로써 대신하였다.

외삼촌에게서 온 편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할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편지 속의 언어들을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낭독해야 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