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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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13
  • 김선옥
  • 승인 2023.05.20 05:58
  • 기사수정 2023-05-20 0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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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12에 이어)여러 날 지난 후에 그녀는 해열의 사건들을 신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동생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반란이었다.

면회가 허락되었을 때, 그녀는 어머님 대신 외삼촌과 함께 갔다. 면회를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해열은 의외로 반가운 기색이었다.

"이젠 외삼촌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용서해 주세요. 잘못 대했던 제 행동들도요."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철창 너머 얼굴은 예전 같지 않았다. 초췌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며 어딘가 얼이 빠진 사람 같았다. 말을 하면서 해열은 연신 손을 깍지 끼웠다 풀었다 하는 동작을 반복했다. 초조하거나 침착하지 못할 때에 늘 하던 동생의 버릇이었다. 외삼촌도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착잡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언젠가 동생의 그런 동작들을 외삼촌의 편지에 썼던 기억이 났다. "

“개인이 조직과 맞설수는 없어요. 아무리 단단한 각오로 덤벼도 깨지게 되어 있어요. 개인은 불리해요. 멍청이 바보짓 같아.”

"새삼스럽구나.이제야 그걸 깨닫다니."

"왜곡되고 날조된 문항들로 우리의 목소리를 모조리 삼켜 버렸어요. 저항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겠죠. 각오를 다질 겨를도 없이 쉽사리 항복하고."

해열은 백기를 들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녀는 동생의 진의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자유가 횡행하는 시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자유의 나라에서 해열이 견디기 어려웠던 게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해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대의 앙금은 외삼촌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고 어쩌면 해열에게도 있었는지 모른다. 외삼촌의 어두운 생을 아는 해열이 왜 그런 무모하고 어리석게 행동했는지 의문이었다. 해열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외삼촌의 잃어버린 생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현명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까. 동생이 괘씸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삼촌 또한 입을 다물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인간은 왜 시행착오를 할까. 옳은 게 어떤 건지 아직도 혼란스럽구나."

외삼촌은 침묵 끝에 내뱉었다.

"원한다고 다 가질 수는 없는데."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는 외삼촌이 하는 말의 뜻을 깊게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외삼촌은 비밀의 문 저쪽에서 서성이는 두렵고 낯선 존재로 느끼는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삼촌 스스로 벽을 치고, 접근을 금한 탓이거나 아픔을 객관적으로만 느낄 뿐 그녀는 아직 외삼촌에게서 가족의 친밀감을 느끼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동생과 만나 화해한 후에도 외삼촌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별히 두드러진 부분이 없어 마음을 놓으면서도 외삼촌이 했던 수상한 말들이 그녀는 때때로 마음에 걸렸다. 어쨌거나 어머니나 그녀도 해열이 출감할 날을 기다리며 예전처럼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여기가 윤신권 씨 댁입니까?"

점퍼 차림을 한 건강한 체구의 사람 두 명과 안경을 낀 왜소한 남자가 문밖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확인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안경 낀 남자는 덥지도 않은데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아무도 없었더라면 금방이라도 풀썩 스러질 듯 진이 빠진 기색이었다.

"윤신권 씨가 죽었습니다. 우린 지금 연고자를 찾고 있어요."

그녀는 그들을 따라 걸었다. 언덕을 올라가자 낡고 초라한 교회당하나가 부서질 듯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안경을 쓴 남자는 그 교회의 목사이고, 나머지 사내들은 형사였다.

“윤 선생이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게 서너 달 전일 겁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즈음이면 외삼촌의 출소 시기와 맞물렸다. 새벽마다 집을 비운 건 그래서였던가. 외삼촌의 새벽 나들이가 교회 때문이었다는 게 어쩐지 기묘했다. 뒤늦게 그걸 알게 된 그녀의 심사도 착잡했다.

"새벽 예배를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못 보던 낯선 얼굴이 뒤쪽에 보였어요"

목사는 다시 이마의 땀을 닦아 내었다.

“그날 그분과 함께 아침 식사를 같이했죠. 그러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분은 정말 순수한 분이었지요. 마치 어린아이 같았어요.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그런 분이었어요. 그런데 왜………”

죽었을까요. 하고 묻고 싶은 것 같았지만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는 외삼촌이 오랜 세월 사상범으로 갇혀 있었던 사실을 몰랐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목사는 외삼촌의 죽음으로 교회가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또는 자신이 불순한 사상에 연루되어 당국의 눈총을 받지나 않을까, 그 사실을 더 염려하고 있었다.

교회는 멀리서보다 더 낡아 보였다. 서툴게 만든 교회의 출입문에 손을 대자 비명을 지르듯 끼이익 소리가 났다. 실내로 들어서자 외삼촌을 보았다. 외삼촌은 교회 마룻바닥에 누워 있었다. 출감한 이후 그녀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모든 것을 다 용서한 자애로운 표정, 어렵고 힘든 삶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그런 얼굴이었다. 시체가 된 그의 얼굴 위로 교회 유리창을 타고 들어온 햇살 한 가닥이 흘러들었다.착각이었을까. 순간 그녀는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는 외삼촌을 보았다. (끝)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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