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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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9
  • 김선옥
  • 승인 2023.05.01 06:06
  • 기사수정 2023-05-01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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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8에 이어)행방불명된 동안 외삼촌의 행적을 증언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든 간첩을 잡으면 승진의 기회가 보장되던 때 나타난 외삼촌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당사자가 아무리 부정해도 틀에 갇히면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외삼촌 역시 그러했다. 굵고 튼튼한 올가미로 얽어매고, 빠져나올수 없도록 단단히 엮었다. 악랄한 죄들은 외삼촌의 호소를 허공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아무리 항변해도 그건 혼자서 떠드는 독백이 되었고,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살고 싶어서 숨었을 뿐이었는데 간첩이 되었어. 각본에 의해 정해진 간첩이란 배역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셈이지. 내게 주어진 배역에 나는 최대한 충실했는데도 운명은 내게 너무 잔혹하고 냉담하구나.”

외삼촌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가슴에 다시 통증이 이는 걸 느꼈다.

“수감 생활을 하면서 나는 더 많은 걸 깨닫게 되었단다. 너무 길지만 않았다면 좋은 경험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감옥은 내게 생각할 기회를 얻게 해 주었다. 정신적인 성장의 계기였다고 할까. 운명은 때론 자신이 계획했던 것과 다른 판이한 방면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가지. 하지만 거기에도 분명 신의 오묘한 섭리가 있을 거야."

외삼촌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편지에서 읽었던 하나님에 대한 구절들을 생각해 보며 외삼촌이 어쩌면 종교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막연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곳에서 국가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따랐어. 철저하게 순종하며 하루하루를 지냈지. 내 감정이나 생각은 모두 버리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그렇게라도 해서 하루 빨리 철창 밖의 하늘을 보고 싶었으니까”

공허한 목소리였다. 또렷하고 진지하게 표정의 외삼촌은 너무나 슬퍼보였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보던 수감자의 생활을 떠올리며 짓누르며 살았을 외삼촌의 감정을 어림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나온 거죠?"

해열은 그제야 호기심이 솟았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모르겠다. 그들의 요구에 맞춰 모범수로 생활했는데도 번번이 출감이 미뤄졌지. 희망이 송두리째 꺾이고, 열망이 물거품처럼 스러지는 시간들을 너무 많이 경험하면서 극심하게 좌절하기도 했어.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음에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이제야 간신히 자유를 얻었단다. 인생을 다 소모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지금에야 겨우”

해열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나오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소중하고 그리운 것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원하던 자유를 얻고, 너희들을 볼 수가 있어서 가슴이 벅찼다. 나는 이제 자유롭다고 고함을 치고 싶을 정도로 좋았어."

앙금처럼 남아 있던 고통이 외삼촌의 얼굴에 다시 피어올랐다. 해열의 눈엔 연민과 증오가 눈물과 함께 젖어 있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오랫동안 기대했던 자유가 너무 황홀해서 내가 잠시 철부지가 되었던 모양이다. 세상의 다른 것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모든 게 참 부질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말을 마친 외삼촌은 방을 나갔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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