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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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2
  • 김선옥
  • 승인 2023.03.18 06:58
  • 기사수정 2023-04-29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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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1에 이어)귀가 어두워지기 시작한 할머니를 위하여 몇 번씩 읽고 난 후면 목이 칼칼해서 갈라질 것 같았다. 그런 작업들은 그녀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었다. 가족들에게 감사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그의 편지들은 아름다운 수식어로 꾸며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글 저부에서 살아 숨 쉬는 피맺힌 통곡의 냄새를 맡아 내었던 때문이었다

그는 때때로 일 년에 몇 번쯤 환희로 가득 차 있는 글을 배달하였다.

그의 글들은 대체로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어머님, 어쩌면 이번엔 특사로 출감될 것 같습니다.'

출감. 이 얼마나 근사하고 달콤한 단어인가.당치도 않은 그 한 구절 때문에 해소 기침으로 시들어 가던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던 것을 그녀는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결국 부도나고야 말 글귀 때문에 오는 후유증을 할머니는 심하게 앓았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출감이란 단어를 신뢰하였고, 희망하였고, 기대치 뒤에 오는 허탈을 감당하지 못해 앓곤 하였다. 출감이란 할머니에겐 오지 않는 행복의 파랑새였다. 돌아가신 지 정확히 십오 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 되었으니 생전엔 망상에 불과한 단어였던 셈이다.

현관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던 외삼촌은 그녀가 생각하는 사이에 집밖으로 나간 모양인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나 동생 해열에게 외삼촌의 외출을 알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소리 나지 않게 걸어 나가 현관의 문을 잠갔다.

어디로 간 것일까. 외삼촌이 갈 만한 데라곤 아무 곳도 없을 텐데 이른 새벽에 왜 집을 나갔을까. 그녀는 가벼운 궁금증이 일었다.

한편으로 외삼촌이 어떤 방법으로 어젯밤의 충격을 소화해 내고 있을지 그것도 궁금했다.

출감 일을 통보받고 외삼촌을 맞으러 가야 했을 때, 해열은 외삼촌을 만나는 일이 싫다고 거절했다.

별수 없이 그녀는 어머니와 둘이서 갔다. 끝까지 만남을 피할 수 있다면 해열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어머니는 외삼촌과 맞닿아 있는 유일한 피붙이였으며 그를 받아 주어야 할 유일한 가족이었으므로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푸짐한 저녁 식사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던 해열은 밤이 늦은 후에야 취해서 돌아왔다. 취했다기보다 흡사 술에 빠진 사람 같았다. 아예 작정하고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모두가 모여 있는 방에 곧장 걸어 들어온 해열은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외삼촌을 향하여 마주 앉은 해열의 표정은 흡사 공격을 감행하려는 맹수 같았다.

"당신이 미워요”

해열은 외삼촌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거칠게 말했다. 그의 말이 그곳에 모인 모두의 가슴에 아프게 박힌다는 걸 염두에 두지 않는 태도였다. 해열이 사용한 언어는 섬뜩하고 예리한 칼날이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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