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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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5
  • 김선옥
  • 승인 2023.04.08 06:59
  • 기사수정 2023-04-29 0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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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4에 이어)“사상범들에게 붙는 일종의 꼬리표 같은 것이지요. 빨갱이 공산주의자, 이 나라에서 그런 위험 표시를 달고는 아무것도 못해요. 앞으로도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제대로 할 수나 있겠어요?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간첩인 외삼촌이 대체 나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참았던 분노를 터트리는 해열의 입은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따끔거렸다. 해열이 맛본 슬픔과 좌절의 농도를 알고있었다. 불모지의 유배나 다름없는 막막함이 동생을 얼마나 망가뜨렸는지, 길고 어두운 절망에서 헤어나기 위해 그가 얼마나 처절하게 뼘 발의 안간힘을 썼는지 다 알고 있었다. 활화산처럼 피어오르던 그때의 아픔을 생각하자 다시 가슴이 쓰라렸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또 뭘 하죠? 어디든 신원조회에 걸릴 텐데요."

외삼촌은 애써 충격을 감추려고 했지만 그녀에게까지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해열은 체념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내 장래는 보나마나 볼 장 다 본 셈이죠.”

해열은 외삼촌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가서 펀치 한 방으로 쓰러드릴 심산 같았다. 결정적일 때 강타를 휘갈길 태세였다. 처음엔 외삼촌은 해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으나 차츰 알았다는 듯 슬픈 표정으로변해 갔다. 그녀는 그런 외삼촌이 측은했다.

"그만해.. 해열아. 제발."

말렸지만 해열은 이미 겨냥한 활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애원하는 그녀의 눈빛은 아랑곳없이 그녀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마지막 활시위를 당겼다.

"거지 같은 자식이 왜 우리 누나를 차 버렸는지도 당연히 아셔야만 해요. 그래요. 모든 게 다 당신 탓이니까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본 외삼촌은 이제 해열의 말뜻이 무엇인지 다 알아 버린 모양이었다. 그녀를 돌아다본 시선에 용서를 구하는 기색이 보여 그녀는 황망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대신에 그때까지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어머니가 해열의 등을 후려치며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이놈의 자식이 지금 환장을 했지. 왜 느닷없이 누나 가슴에 못 박는 소리를 꺼내는 거여. 술을 퍼마셨으면 곱게 들어가 잘 일이지. 주정은 무슨 지랄 맞은 주정이냔 말이여."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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