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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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6
  • 김선옥
  • 승인 2023.04.15 08:14
  • 기사수정 2023-04-29 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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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5에 이어)어머니는 오열을 터트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런 일은 예전에 없던 일이었다.

가난하였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의 상처를 건드릴까봐 미리 겁을 내고 조심했는데 그 밤은 달랐다. 아슬아슬하게 지켜 온 배려의 감정들은 균열을 일으켰으며 서러움의 둑들이 터졌다.

축하의 밤은 엉망이 되었다. 외삼촌의 출감을 위해 아름다운 저녁을 기대했던 그녀의 꿈은 슬프게도 박살났다. 그녀의 심장이 무겁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목을 조여 오는 새로운 증상과 함께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남편 윤수가 그녀를 버린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그녀 외에 다른 여자가 있었으며 그 여자에게는 사내아이가 있었다. 또한 그 여자의 집은 그녀의 집에 비해 여유가 있어 윤수에게 뒷돈을 대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그런 사실들은 말하지 않았다. 식구들은 윤수가 다섯 번째 취직 시험에서 실패한 뒤 찾아와서 했던 한마디 말로 그가 그녀를 버린건 외삼촌 때문이라고 믿게 되었다.

'또 떨어졌어요. 처외삼촌 때문이래요.‘ 윤수가 강하게 강조했다.

식구들은 그녀가 친정으로 되돌아왔을 때 순전히 외삼촌 탓이라고 믿어 버렸다. 출가외인인 그녀에게 외삼촌이 무슨 이유가 되었겠는가. 그런데도 식구들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 또한 윤수에게 자신을 버린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윤수는 그녀를 두려워하였다. 어쩌면 그녀에게 묻어 있는 우울함, 어둠과 슬픔 따위의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윤수는 또 명석하고 빠른 그녀의 두뇌 때문에도 화를 내었다.

'우울해 보이는 네 얼굴이 좋았었지. 그런데 이제는 그 얼굴 때문에 네가 싫어졌어. 좋을 땐 그런 게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는데 싫어지니까 모든 게 청승맞고 궁상스러워. 여자는 좀 모자란 듯 해야지. 똑똑한 여자는 남자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단 말이야.

그녀는 어째서 그러느냐고 묻지 않았다. 결혼이 그랬던 것처럼 일방적으로 윤수가 하자는 대로 했다. 절차는 간단했다. 합의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고, 같이 법원에 갔고, 가지고 갔던 물건들을 싣고 되돌아왔다. 결혼 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들으신 소감이 어때요? 당연히 무슨 말씀이 있으셔야죠."

해열이 야유하듯 물었다. 모질고 야멸스런 재촉에 숨 막힐 듯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영원히 침묵이 계속될 것 같았다. 외삼촌은 한순간 황량한 표정을 지은 채 해열을 오래토록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일이 터졌을 때 난 동네의 이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 시골에선 일을 처리할 만한 사람이 드물었어. 그 시절엔 모두들 배우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별수 없이 내가 이장 노릇을 했던 거란다."

아득히 먼 옛날을 거슬러 올라가듯 회한이 서린 말투였다. 오래 참았던 한(恨)이 말 한마디, 목소리에 마저 섞여 있었다. 그녀는 눈물이 나올것 같았지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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