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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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3
  • 김선옥
  • 승인 2023.01.07 06:11
  • 기사수정 2023-01-09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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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투데이 군산
자료사진=투데이 군산

(…#11-2에 이어)남편이 떠난 뒤에도 그녀는 아들을 훌륭히 키울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아들이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명문대학에 당당히 합격했을 때 하늘은 푸르고 높았으며 주위 사람들도 부러워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모두들 축하해 주었는데, 지금은 다들 달라졌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변하고, 잔인한 존재인지 실감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익숙하지 못해도 특별히 나쁘지는 않았는데 반국가적인 인물이 된 아들로 인해 사람들은 그녀를 냉대하고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이웃들은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였고, 법정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듯 그녀를 기피했다.

-모든 게 환경 탓이야. 자식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비틀어지지 않도록 길러야 한다니까.

-애 아버지는 지금도 젊은 여자랑 딴 살림하나?

-그렇지는 않은데, 아직 용서를 안 하는 모양이야. 아들이 그런 처지라면 넋이 다 나갔을 텐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직장에 다니다니 정말 지독하기도 하지.

- 외도 한번에 별거한 것만 봐도 뻔해, 콧날이 저렇게 오뚝하니 팔자가 사나운 거야.

이웃들은 그녀의 상처를 쑤시고 끄집어내었다. 뒤에서 소곤거리며 공공연하게 험담을 늘어놓았다. 정당한 평가가 유보된 아들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할 수가 없어 속이 탔다. 비틀어진 성격으로 치부된 아들의 행위에 바람막이가 되어 주지 못해 가슴이 쓰라렸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의 문을 연다. 차갑고, 사나운 바람이 볼을 할퀴며 덤벼들었다. 얼굴을 베란다 밖으로 내밀어 크게 숨 쉬며 얼마 동안 가만히 서 있다. 마음이 조금 평온해지자 아파트 아래의 광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빈 터의 공사현장이 어림으로 보인다. 그곳에선 이른 아침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중기차들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파트를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라 소음이 요란했고, 곤두선 신경을 계속 뚫고 들어온다.

어둠은 이미 안개처럼 소리 없이 퍼져 있다. 밤이 깊어지면 주변 공사장은 조용해지고, 종일 시끄럽던 광장엔 칙칙한 어둠만 짙게 깔린다. 어둠 속 어디선가 그녀를 노려보는 섬뜩한 시선이 느껴진다. 정체를 알 수없는 음산하고 기분 나쁜 시선은 칼날이 스치는 것처럼 예리하게 그녀를 훑고 지나간다. 황급히 문을 닫고 커튼을 내렸지만 시선은 쉽게 차단되지 않는다. 커튼의 작은 틈새를 비집고 따라온 섬뜩함에 가슴이 쿵쿵 울리기 시작한다. 메스껍고, 토할 것 같다. 현기증과 함께 패일 듯 두통이 올라온다. 발작적인 이 증상은 아들이 집을 나가기 훨씬 전부터 생겼다. 하루에도 여러 번 시달릴 때도 있어 가능한 참지만 힘들면 약으로 고통을 잠재운다. 이제는 약을 의지하지 않고, 참을 수 없을 정도다.

벽의 한쪽에 놓여 있는 장식장을 향해 쓰러질 듯 몸을 가누며 걸어갔다.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는 그곳에는 상비약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이름을 알 수 없는 약들이 무더기로 있었다. 병을 꺼내어 속에 들어 있는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약을 복용할 때면 부작용의 두려움을 걱정하지만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성분을 모르는 다량의 약들은 위를 자극해 그녀를 침식하고 있지만 증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른 침으로 삼킨 연초록빛 정제도 순간적인 효과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도와주세요. 어머니………저를 구해 주세요.

경채의 목소리가 들린다. 극심한 고통에 잠겨 간신히 부르짖는 처절한 목소리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목소리만 들릴 뿐, 아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주위는 허허벌판인데 안개가 짙게 퍼져 있어, 어디가 어디인지 식별할 수조차 없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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