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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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4
  • 김선옥
  • 승인 2023.01.13 18:41
  • 기사수정 2023-01-13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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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투데이 군산
자료사진=투데이 군산

(…#11-3에 이어)

"경채야, 어디에 있니? 기다려라. 내가 그곳으로 갈 거야. 가서 도와주마.”

애가 타서 소리를 질렀지만 목에 잠긴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발마저 땅에 달라붙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더 내디딜 수가 없다.

- 어머니 저를 좀…… 구해 주세요. 어머니.

"경채야!"

목소리가 서서히 사라지다가 아주 들리지 않게 될 때에야 비로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리에 놀라 퍼뜩 깨어났다. 꿈이었다. 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목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가 아들을 만날수 있었더라면, 꿈에서지만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

그녀는 자주 악몽에 시달렸다. 꿈에서도 아들은 목소리만 들렸고,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일주일쯤이던가, 딱 한번 아들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장소는 말할 수 없지만 안전한 곳이라고 했다.

-건강은 괜찮으니까 걱정 마세요. 다들 같이 있으니까 든든해요, 붙잡히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고요. 하긴 붙잡혀도 별다른 일은 없겠지만요. 아들의 목소리는 절박했고, 초조와 긴장의 느낌도 실려 있었다. 안심하라고 말했지만 어디에 있건 아들이 있는 곳은 이미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아들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붙잡혀서 어떻게 될지 그녀는 안다. 붙잡히면 유다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아들도 그걸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체포되는 것보다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 동지를 팔게 될 수도 있어 걱정스러울 것이다. 아들이 붙잡히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그녀는 백기를 들고 싶은 유혹을 아들이 견뎌 내기를 바랐다. 안부가 궁금하지만 무사히 숨어 있다면 상관없었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아들에게 북한의 사주나 김일성의 사상, 사회주의 혁명을 연결시키는 것은 트집이지만 혐의는 이미 구체화되었으므로 아들은 가능한 숨어 있어야 했다.

정치에 관심 없던 그녀도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주변을 떠돌았다. 기관에 의한 진절머리 나는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정신이 돌아 버린 사람, 병신이 되거나 자살한 사람, 간첩으로 평생을 철창 안에서 늙는 사람, 폐인이 된 사람, 거지처럼 떠돌며 사는 사람, 때때로 의문스런 죽음들도 있었다. 전율을 일으키는 별의별 소문들이 끊임없이 흘러 다녔다. 상상이 빚어낸 유언비어거나 기우이기를 바라는데도 불구하고 소문들은 끌려갔다 나오면 사회에 정상적으로 적응하기는 힘든 모양이다. 따라서 아들은 잘 숨어 있어야 했다. 숨 막히고,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겠지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꼭꼭 숨어야 했다.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기를, 차라리 투명인간이기를 그녀는 기도했다. 도피는 그다지 길지 못할 것이다. 조작은 곳곳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고, 수배자의 전단지가 곳곳에 붙었다.

불을 켰다. 벽시계는 한 시를 넘었다. 약기운에 옷을 입은 채로 누워잠깐 잠들었다.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불면의 뿌리도 몸 어디엔가 질기게 자리 잡았다.

저녁을 먹지 않았지만 배는 고프지 않다. 대신 극심한 갈증이 생겼다. 혀가 바짝 타올라 소파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걸어갔다. 퇴근 시에 샀던 우유가 냉장고 안에 그대로 있다. 우유를 손에 들자 한꺼번에 두 개씩 거뜬하게 비우던 아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먹어도 아들은 이상하게 살이찌지 않았다.

아들이 식사나 제대로 했는지 걱정이 된다. 혹시 굶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팔의 짧은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는데 추위를 어찌 견딜지, 여러 생각들이 뒤엉켰다. 저녁은 먹었는지, 야윈 몸무게가 그나마도 더 줄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아들의 눈물이 팽그르르 돈다.

- 용서해다오.

그녀는 입속말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들의 부재가 세심하지 못했던 예전의 관심과 배려를 자꾸만 확대시킨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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