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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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11
  • 김선옥
  • 승인 2023.03.04 06:37
  • 기사수정 2023-03-04 0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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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에 이어)

"자식이란 늘 애물단지지요. 크거나 작거나 말예요. 경채 때문에 걱정이 많으셨지요?"

그래요, 하고 대꾸하고 싶었으나 부인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어 망설였다.

“아이들이 하는 일을 뭐라고 평할 수는 없지만, 경채나 우현이가 하는 일은 옳아요. 그래서 나는 그 애들을 지지합니다."

그녀가 끓여 온 녹차를 마시며 부인이 차분하게 말했다. 확신에 찬 부인에게 선수를 빼앗겼지만 그녀는 반박하고 싶었다. 내 아들이 그러는걸 나는 원치 않아요.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그 애는 그럴 수 없어요. 아들은 내 꿈이고, 희망이고, 나의 모든 것이에요.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승산 없는 싸움은 포기해야죠. 지금은 때가 아니에요. 하지만 묵묵히 차만 마셨다.

아들이 그런 바보 같은 일에 뛰어들다니, 그녀는 절대로 찬성할 수 없다고 부인에게 말하고 싶어도 여전히 입을 다문다. 부인에게는 보이지않는 힘이 있고, 그 힘은 처음부터 그녀를 압도했다.

"남편과는......"

초면의 부인이 그런 질문을 하는데도 전혀 무례하게 들리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며칠 전에 만나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노라고, 아직 용서할 수 없지만 이해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채는 아버님 이야기도 가끔 했어요. 그러나 아버님보다 어머님 걱정을 더 많이 하더군요. 사람은 때때로 실수해요. 그게 인간들의 약점이죠. 그래서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겠어요? 아버지 일도 있는데 자기로 인해 어머니의 상심이 엄청날 것이라고 걱정하더군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처음엔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지 모르죠. 지금이라도 경채가 문을 열고 현관을 들어설 것 같은데."

"누구나 그럴 거예요. 경채 어머님도 환상을 빨리 버리세요. 그것이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도록 하니까요.”

섣부른 환상이라고 말하지 않고, 부인은 그녀를 다독이면서도 단호하게 자른다.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여겨지는 부인의 말에도 그녀는 아들이 하는 일을 정말 모르겠다. 나직이 한숨을 쉰다. 환상이란 그녀를 지치게 하지만 아직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 애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아무 내색도 없다가 갑자기 자신을 보여 주다니. 나는 아들에게 왜 의논할 대상이 되지 못했을까요? 어머니이기 전, 교육자인 내게 숨길 게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건 나도 모릅니다. 나 역시도 평범한 어머니였거든요. 나는 아들이 둘인데, 둘 다 그런 일을 해요. 큰애가 처음 운동권에 뛰어들었을 때, 둘째라도 그러지 않게 하려고 내 딴엔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런데 우현이도 결국 형을 따라가더군요. 착하고 모범생이어서 공부도 제법했는데.”

화가 나서 내뱉는 그녀에게 부인은 자신의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사회가 우리 아이들을 평범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모양이에요.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려니 생각하고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 저도 같이 뛰고 있답니다. 애들이 고생하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터지지만 그게 할 일이라면 어머니로서 도와주어야죠. 그 이외에 무엇이 더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무조건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로 했답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치켜뜬 눈에 물기가 비쳐 그녀는 숙연했다. 그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부인의 태도에서 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전적으로 신뢰하는 흔들이지 않는 확고한 신념이 느껴져 부러웠다.

“실은 그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는데."

부인이 다음 말을 꺼내기 전부터 가슴이 쿵쿵거린다.

경채에게 무슨 일이.….….”

"짐작하시겠지만 숨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내일 보도되면 아시게 될 것이고, 전화로도 말씀드릴 수 있지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다 싶어서."

불길한 예감이 그녀를 후려쳤다. 밤중에 부인이 찾아온 것은 심상치 않은데 그걸 간과했다.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온 부인은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무슨 이야기든 그녀는 빨리 들어야 했다.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았어요. 경채가 붙잡혔답니다, 운이 나빴어요. 조심성이 많은 아이였는데, 경채는 어머님의 마음이 알고 싶었던가 봐요. 아버님 만난 결과가 궁금해서 전화를 걸어 볼 생각이었겠죠. 나왔다가 그렇게 된 건 경솔한 행동이지만 그 애를 이해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숨이 차오른 그녀는 의자의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 조금씩 숨을 들이켰다. 질식할 것 같던 숨이 점차 나아지고, 흐릿했던 부인의 모습도 한결 뚜렷하다. 부인의 표정에 걱정하는 빛이 역력했다.부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미안합니다. 이러지 않아야 하는데."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얼굴이 일그러졌다.

"경황 중에도 경채는 항상 두 분이 예전처럼 화해하고, 사랑하기를 기도했어요. 그게 경채의 기도제목이었답니다. 경채를 위해서 이젠 두 분이 서로 힘을 합하세요. 그래야 부정한 것들과 싸울 수 있어요. 우리에겐 가족처럼 돕고, 힘을 합해 싸우는 단체가 있어요. 아마 경채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뭉쳐서 함께 일하면 소속감이 생겨 외롭지 않아요. 어려울 땐 큰 힘이 되고요. 이젠 법정에서 싸울 준비가 필요해요. 어머니들은 언제나 강하지요. 힘내세요. 경채도 그걸 바라고 있을 테니 쓰러져선 안 돼요."

부인이 가고 난 뒤에도 가슴이 계속 방망이질했다. 혼자 있기가 두려웠다. 그녀는 핸드백을 뒤졌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하라고 준 남편의 명함을 받아 둔 일은 정말 잘했다. 남편의 전화번호를 찾아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저예요. 방금 소식 들었는데 경채가 잡혔대요. 무서워요. 겁이 나서 몸이 오싹오싹해요. 좀 와 주었으면 좋겠어요. 도움이 필요해요."

"알았소. 내 곧 가리다. 걱정하지 말아요."

어린아이처럼 투정하는 등쌀에 남편이 달래듯 말했다. 매력적이던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안심했다.

전화가 끊어지자 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환희와 까칠한 얼굴, 형편없이 초췌해 있을 아들과의 접견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 불안했다. 피를 말려 버릴 극심한 통증이 서서히 몰려온다. 그녀는 장식장으로 걸어가 연초록빛 정제를 꺼냈다. 한 알, 두 알…… 병에서 꺼낸 약을 한꺼번에 입속에 털어 넣는다.

희미한 의식 속에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그녀다. 그녀는 남루하고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다. 아이들이 몰려있는 곳에 섞이지 못하고, 한쪽 모퉁이에서 더럽게 때가 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아이는 술래잡기나 땅뺏기 또는 고무줄놀이를 할 때도 끼지 못했다. 친구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어 부러운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 언제나 외톨이였던 당시의 기억들이 과거의 갈피에서 홀연히 뛰쳐나오다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녀는 늘 용기가 없었다. 강한 척했지만 부서지기 쉬운 여린 마음을 지녔다. 알량한 자존심에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다. 이제는 변하고 싶다. 깊게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세상을 다시 살고 싶다. 우현의 어머니처럼 강한 어머니가 되고 싶다. 죄인처럼 웅크리지 않고 당당하게 그렇게 살고 싶다. 꺼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녀는 현관의 벨이 울리고, 붉은 신호등이 푸르게 바뀌는 것을 보았다. (끝)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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