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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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10
  • 김선옥
  • 승인 2023.02.25 07:50
  • 기사수정 2023-02-25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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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에 이어)

"나는 당신의 거부를 순간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어. 기껏 며칠, 길어야 몇 달일 거라고, 당신은 그게 아니었지. 내가 크게 오산했어. 안 그러면 집을 나오지 않는 건데, 당신의 대단한 고집을 나중에야 확실히 알았지만 그땐 어쩔 수가 없었어."

그녀의 거부는 의외로 질겼다. 그녀의 거부에 적의가 포함되어 있음을 그는 나중에야 알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입힌 상처를 과소평가했던 것도 그의 실수였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섣부른 행위를 질책했을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도 당신이 원하는 그대로 할 거야. 용서해 준다면 뭐든 하겠어. 무릎을 꿇으라면 끓고, 빌라면 빌고, 당장 당신이 시키는 걸 할 수 있어."

그럴 것이라면 진작 빠르게 돌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 집요하게 오기를 부렸던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랬는지 알 수 없다. 여자와 헤어진 것을 알았고 혼자서 지낸 것도 안다. 그런데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설사 돌아왔더라도 그녀가 받아 주었을까.

어쩌면 완강히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당시엔 거센 바람이 불지 않았고,어둡고 추운 날이 있으리라고 예감하지 못해 그를 외면했을 수도 있다.그녀는 홀로 설 수 있다고 자신하였으며 울타리를 견고하게 지킬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날이 너무나 빨리 닥쳤다. 이런 날을 예비했더라면 일찍 화해하고, 쫓기는 아들의 가슴에 넉넉한 사랑을느낄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아들에게 미안했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아파트 앞까지 그녀를 데려다 주었다. 들어오라고, 들어와서 차를 마시고 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말을 삼켰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듯 감정을 실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용서할 마음이 아니면서 그를 집안에 들어오도록 허락할 수는 없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남편도 말없이 차를 몰고 떠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외로움이 그녀를 맞는다. 빈집의 적막이 살벌하고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다.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이 견딜 수 없다. 외출복을 벗고, 세면장으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씻고 또 씻었지만 마른 버짐이 핀 얼굴은 지치고 피로한 모습으로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자존심으로 무장할 수 없는 중년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슨 바보짓을 했느냐고 묻는다. 그가 용서를 구할 때, 왜 선뜻 용서한다고 말하지 못했는지 화가 났다. 그와 함께라면 이웃들의 냉소를 과감히 무시하거나 당당히 맞설 수 있고 아들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숨어 있도록 격려가 될 터였다.

세면장을 나왔다.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 내고 싶다. 소리 내어 울고 싶고, 낄낄 큰소리로 웃고 싶기도 했다. 남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가 비워 놓았던 시간들을 한바탕 투정하고 싶은 기분들이 어처구니없다.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곧 겨울이다. 아들은 얇은 옷차림으로 집을 나갔다. 입을 수 없겠지만 아들을 위해 두껍고 따뜻한 옷을 준비할 시기였다.

그때, 현관의 벨소리가 울렸다.

밤에 누구일까,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과일 바구니를 든 부인이 현관에 서 있다가 그녀가 어정쩡하게 망설이는 사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부인은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어딘가에서 강인함이 품어져 나왔다. 부인이 우현이 어머니임을 직감했다.

“일전에 전화했었죠. 우현이 어머니요. 밤인데 실례가 안 될지 모르겠군요."

직감은 정확했다.

"차를 드릴까요?"

현관의 문을 닫고, 거실로 안내하며 묻는 그녀에게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대의식이 있어서인지 거침없는 부인의 말투와 태도에도 거부감이 없다. 화장하지 않은 부인의 얼굴은 정갈하고 기품이 있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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