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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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1
  • 김선옥
  • 승인 2022.12.24 07:36
  • 기사수정 2023-01-09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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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투데이 군산
자료사진=투데이 군산

오늘도 아들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잠적은 의외로 길게 이어질지 모른다. 아들을 기다리며 밥을 짓고, 옷을 정리하고, 국을 따뜻하게 데워 놓는 일상의 일들이 고통스럽다. 뼈를 시리게 하는 공허한 기다림을 그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눈을 감는다. 예전의 기억들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사람들에게 끌려 나가며 울부짖던 아버지, 아버지를 찾으러 나가서 영영 소식 없던 어머니. 홀로 남은 그녀의 양육과 자식들을 기다리며 눈물이 마를 날 없었던 할머니의 삶. 그녀는 이 모든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터전을 일구었다. 그런데 지금 아들이 수배자가 되어 그녀에게 다시 고통의 씨앗을 뿌렸다.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부쩍 경계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경채네 집이지요? 경채 어머님 되시나요? 저는 우현이 어머니에요. 반가운 기색의 낯선 목소리지만 아들에 관계된 전화는 대부분 좋지 않은 소식이라서 조심스러웠다. 미간을 좁히고 기억을 더듬었으나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는다.

"잊으셨을지 모르겠지만 민우현이라고, 경채와 함께 수배된 경제과 학생입니다."

<독재타도>라고 쓴 띠를 머리에 동여매고 아들은 대규모 학생 집회를 주도하였다.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팔을 내뻗으며 구호를 외쳐 대던 모습을 화면에서 보았을 때, 그녀는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빨간 완장을 두르고 들이닥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락에 숨어있던 아버지를 끌어내릴 때의 무서운 얼굴과 겹쳐서 떠올랐다. 눈부시던 태양이 빛을 잃고, 높이 쌓아 올린 탑들이 와르르 굉음을 내며 부서져 내리던 그때, 아들 경채의 이름은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그 뒤에 쓰여 있던 또 하나의 이름이 민우현이었다. 그런데 왜 그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전화를 걸었을까.

"경채가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어머님을 한번 찾아뵙도록 부탁했는데 약속하고도 일이 바빠서 미처 시간을 못 냈어요."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아들은 왜 직접 연락하지 않는가. 그녀는 아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격려하거나 용기 있게 말할 수 없겠지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울지 않고, 고통도 결코 눈치 못 채게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할 텐데 왜 다른 사람을 통해 소식을 전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님 이야기는 경채에게서 많이 들었지요."

“저는 우현이 어머님을 잘 모르는데.”

“피차 그럴 여유가 없었죠. 어쩌면 이번이 계기가 되어 가까워질 수 있을 거예요."

상대에 대해 백치나 다름없는 그녀를 잘 안다는 말투였다. 심사가 꼬인 탓인지 불쾌하고 심히 당혹스럽다.

"심려가 크시죠? 아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상대는 능숙하게 대화를 끌어갔다. 상대는 아들에 대해서라면 말이 막히는 그녀와 다른 타입이다. 같이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하다.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가 지금처럼 차라리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한번 찾아뵐게요. 아이들은 나쁜 일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어머님도 마음을 단단히 가지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과 교류하다가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음모에 휘말리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두려웠다. 부인에게서 전해 오는 형언할 수 없는 열기에 부쩍 의심이 솟는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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