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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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9
  • 김선옥
  • 승인 2023.09.20 07:15
  • 기사수정 2023-09-20 0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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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0-8에 이어) 어두운 얼굴로 병실에 있던 그들에게 미안한 나는 그런 식으로 최를 두둔하는 일밖에 마음을 표현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려운 속에서도 사장은 회사의 창립일이나 특별한 날이면 공장을 쉬었다. 일을 쉬게 하는 대신 직원 모두를 넓은 강당에 모아 놓고 잔치를 벌였다. 그런 날은 간부의 부인들과 사장의 부인까지 총출동해 음식을 장만하고, 선물도 마련했다. 그리고 회사에 공이 많은 직원이나, 실적이 좋은 공원들에게 상을 주었다. 잔치가 끝난 다음 날은 얼굴에 기름이 돌아야 할 텐데 공원들은 다들 죽을상이었다.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걸게 차려진 식탁에서 오랜만에 포식하여 체하거나 줄줄이 설사들을 한 탓이었다.

윤숙이가 다친 일이 일어난 얼마 후에도 특별한 날이 아닌데 느닷없이 공장을 쉬고 잔치가 벌어졌다. 직원 부인들은 음식을 장만하면서도 즐거운 기색이 아니었다. 얼굴에 먹구름이 낀 그들은 회사가 곧 부도가 날모양이라고 숙덕이며 이번 잔치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사장이 특별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마련한 자리라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사장의 얼굴도 밝지 않았다. 짐작하고 있었지만 나는 너무 빨리 일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것이 많았지만 공원들도 예전처럼 게걸스럽게 먹지 않았다.

사원들에게 상을 주고, 잔치가 다 끝나 파장이 되어 갈 무렵에 사장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할 이야기가 있다는 그의 모습은 매로 흠씬 두들겨 맞은 사람 꼴이었다.

"저는 유학할 비용과 타이프라이터 한 대로 회사를 세워서 이만큼 키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어려워 회사를 축소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모두 열심히 일했지만 더 이상 저로선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꾸려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퇴직금도 주지 못하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여러분이 자식을 낳아 내가 다녔던 회사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 회사를 크게 키우겠습니다."

말을 이어 갈수록 사장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자리에 모인 직원들 중에서도 몇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옆에 서 있던 김 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방울방울 흘렀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한 손으로 제품 나르는 일을 거들던 윤숙은 최명자가 있는 뒷문 쪽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다른 회사를 물색해서 코앞에 닥친 급한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문제가 내겐 더 절실했다.

잔치의 뒷마무리가 끝나고 언니들과 나는 근처의 다방에 가서 그동안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며 작별의 시간을 보냈다. 다방은 오래된 건물의 이층이었고, 우리들의 마음처럼 우중충했다. 실내는 때가 잔뜩 오른 전등과 빛바랜 벽지가 벽을 치장했다. 우리를 맞는 마담의 얼굴도 건물처럼 늙고, 생기가 없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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