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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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1
  • 김선옥
  • 승인 2023.09.12 07:34
  • 기사수정 2023-09-12 0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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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한때, 나는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내가 속했던 부서는 관리과로 과장은 공석이었다. 계장과 나, 그리고 나씨성을 가진 아저씨, 세 사람이 사무실 직원의 전부였다. 사무실은 너무나 커서 때론 썰렁하기조차 했다.

계장은 키가 작고 못생긴 남자였다. 목포가 고향인 그는 사장과 어찌어찌 아는 사이라고 했다. 그의 책상 속엔 비스킷이나 사탕 같은 먹을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고, 가끔 그것들을 꺼내어 어린아이처럼 혼자서 우물거렸다. 그는 '저 푸른 초원 위에~' 하는 노래를 즐겨 불렀으며, 남진의 열렬한 팬이었다. 가수 남진에 대한 것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조리 꿰고 있어, 그가 남진에 관해서 떠벌릴 때면 가수를 아는 만큼 그가 자신의 애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그에겐 사귄 지 오래된 애인이 있었는데, 나는 그가 애인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그나마 내가 계장의 애인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나씨 아저씨를 통해서였다.

- 계장님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아주 키가 커 그리고 예쁘게 생겼어.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던 사이인 모양이야. 심성이 착한 여자지.

나씨 아저씨는 계장이 왜 결혼을 망설이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야기해 주곤 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한번도 여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여자가 선물로 받은 것들에 관해서는 거의 알고 있었다. 계장은 애인을 위해 매월 중순쯤에 여성 월간지를 샀고, 가끔 베스트셀러에 이름이 오른 책이나 옷, 또는 화장품과 머플러 같은 것도 사 들고 왔다. 그가 사 오는 물건의 대부분은 신문의 하단에 큼지막하게 나 있는 광고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고른 것들이었다. 그는 회사의 일도 그런 식으로 처리했지만 자리를 자주 비우는 게 흠이었다. 그가 자리를 비운 그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나는 묻지 못했다. 윗사람의 행적을 묻는 일은 아랫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나는 궁금해도 참았다.

나씨 아저씨는 키가 크고, 마른 체질로 성질이 아주 유순한 사람이었다. 양쪽 눈가에 잔주름이 많이 잡힌 얼굴의 그는 운전기사들과 농을 나누거나 가끔 아들을 자랑하곤 했다. 나와 단둘이 있을 때면 그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저씨가 아들을 자랑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놈은 날 안 닮았어.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반에서 항상 일등이야. 듬직한 녀석이지. 자식들이 커 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 행복해.

아들을 이야기할 때, 그의 눈가에 가득히 잡힌 잔주름이 펴지고,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그의 삶이 상당히 어렵다는것을 나는 이미 눈치로 알고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이 근무하는 동안 한번도 어려운 살림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얄팍한 그의 월급으로는 세 명의 자식들을 제대로 공부시키며, 살아가기는 빠듯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보며 돈 없이 늙는 삶이 고달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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