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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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3
  • 김선옥
  • 승인 2023.09.14 06:31
  • 기사수정 2023-09-14 0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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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0-3에 이어) “내가 잡아 먹을까 봐 무서워요?"

내가 머뭇거리자 김이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잡아먹지는 않겠지만 무서운 생각은 들었다. 여자처럼 곱살하게 생긴 얼굴이라 인상은 좋은 편에 속했는데도 나는 왠지 그가 무섭고 겁이 났다. 내가 의심을 풀지 않고 쳐다보자 그는 변명하듯 덧붙였다.

“별다른 생각은 없고, 미스 한하고 가까워지고 싶다. 뭐, 그런 뜻이죠.”

예전에도 그는 곧잘 자신과 집안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곤 했다. 사남매의 맏이라는 것,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 객지에 나와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젠 기반을 거의 잡았다는 것, 스물일곱이나 나이를 먹어 결혼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 결혼해서 번듯한 아들을 낳아 부모님께 데리고 가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라는 것을 지나가는 말처럼 들려주곤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는 내가 너무 순진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까 의심스럽다는 말도 슬쩍슬쩍 끼워 넣었다. 걱정해 주지 않아도 잘 산다는말을 나는 그에게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할 것이란 생각에 어쩐지 그말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와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순간, 그와 어울려 커피를 마시다가는 자칫 그와 결혼을 해야 할지 모를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되기 전에 그와 연결되는 통로를 미리 차단하는 것이 옳았다.

"죄송하지만 시간이 없네요. 이것을 오늘 전부 마무리해야 되거든요.”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장부를 들어 보이며 나는 핑계를 댔고, 그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아쉬운 표정으로 물러난 그는 그 뒤로도 시간만 나면 뻔질나게 사무실에 들러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하거나, 수시로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끈질기게 접근하는 그의 방식에 나는 어물쩍 넘어가는 수법으로 대치하며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그는 내가 순진하고 모자라 호의를 베풀면 선뜻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겉으론 그렇게 보였을지 몰라도 생각처럼 나는 그리 순진하지 않았다. 아주 영악했고, 어찌 보면 그를 하찮게 여길 정도로 오만한 구석이 있었다. 생각을 깊이 감추고 있어 그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솔직히 트럭 기사와 어울려 인생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내겐 없었다. 초라한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를 차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나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잘것 없는 상황에 처하여 있음에도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그때는 바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내가 꾸는 꿈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평범하게 인생을 마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는 내가 바라는 희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내 생각은 확고하고, 단단했다.

김 기사처럼 내가 있는 사무실에는 공원들도 자주 들렀다. 교대가 끝나고 들어갈 시간이거나 비번인데도 갈 데가 없는 공원들이었다. 계장의 캐비닛이나 책상에는 먹을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내겐 그것들을 마음대로 꺼내어 나누어 줄 배짱이 없어서 그들에게 아무것도 대접하지 못했다. 윗사람의 허락이 없으면 커피 한잔도 마음대로 타 주지 못하는 내소홀한 대접에도 아랑곳없이 그네들은 심심하면 찾아왔다. 별다르게 베풀지 못하는데도 그들이 내게 찾아왔던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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