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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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6
  • 김선옥
  • 승인 2023.09.17 08:35
  • 기사수정 2023-09-17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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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0-5에 이어) “일 다 끝났니? 같이 나가자. 윤숙이가 다쳤다고 해서 기분도 영 그러니 저녁 먹고, 함께 면회나 갈까 하고."

부잣집의 둘째딸인 오 언니는 한 달 월급보다도 비싼 옷의 주름을 펴며 이마를 찡그렸다. 오 언니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멋쟁이지만 전공과는 상관없이 괜찮은 집 아들을 골라잡아 결혼하는 것이 인생의 최대 목적이었다. 괜찮은 상대를 고르느라 여기저기 중매로 선보는 중이라며, 언니는 간간 선본 이야기를 내게 영화의 장면처럼 늘어놓곤 했다.

언니는 언젠가 아버지의 권유로 회사에 들어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언니의 아버지가 전무하고 친구라고 했다. 결혼할 때까지 놀기 뭐하니까 경험 삼아 근무해 보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구질구질한 이런 회사엔 다니기 싫은데, 아버지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다닌다는 투로 말할때,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허여멀쑥하고 눈빛이 곱지 않은 전무는 아랫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부하 직원들의 평이 좋지 않았다. 그런 전무의 뒤 백으로 회사에 들어왔다고 말하니 언니까지 이상하게 보였다.

전무를 등에 업고 들어온 것은 영업부장 연줄로 들어온 나와 비슷한 절차를 밟았다. 이미 내정된 상태였지만 공식적으로 우리 입사는 회사의 채용 형식을 따랐다. 신문엔 영업부 여직원 0명, 관리과 여직원 0명을 구한다고 공고되었지만 두 명만 뽑았다.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지원자들은 공개된 구인공고에 이력서를 들고 몰려왔는데, 백 명이 넘게 지원했다. 영어 몇 마디와 한문으로 숫자를 쓰는 것쯤이야 그들도 충분히 해냈을 것이고, 사실 면접 시의 질문들 또한 일하는 과정엔 필요도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을 뽑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고, 지원자들은 우수수 떨어졌다.

들러리인 그들이 면접을 보러 와 초조한 눈빛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성이는 것을 내가 모른 체했던 것은 우롱하는 기분이 들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솟았던 탓이다. 그때 오 언니도 나처럼 그런 심경이었는지 모르겠다. 세월이 흘러도 사회의 돌아가는 꼴이 변함없긴 마찬가지지만 새마을운동이 기승을 부리던 그 시절에도 어디든 줄과 백들이 통했다.

“윤숙이는 부모가 없다며? 걔가 벌어서 식구들이 먹고 산다던데 손을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었으니 큰일이다. 주의를 할 일이지. 너는 사람 사는 게 불공평하단 생각이 안 드니? 걔들을 보면 측은할 때가 있더라. 걔들은 왜 돈 많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식사로 나온 비빔밥을 먹으며 언니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하늘에 계신 신이라면 모를까 그런 문제는 나도 알지 못했다.

윤숙은 심심풀이로 직장을 다니는 언니와 달랐다. 주야간으로 벅찬일을 하게 되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힘들게 일해 보지 않은 언니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언니와 다르게 윤숙이 만큼은 아니어도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중요했다. 직장을 잃으면 당장 살기가 막막하기는 나도 윤숙과 비슷했다. 기계가 무섭게 돌아가는 공장에서 땀을 쏟으며 일하지 않는다 뿐이지, 내 신세도 공원들이나 별 차이 없었다. 수선떨 처지도 아니고, 누구를 편들 형편도 아니어서 기가 죽은 나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 언니가 무슨말인가 계속했지만 내 귀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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