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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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8
  • 김선옥
  • 승인 2023.09.19 07:39
  • 기사수정 2023-09-19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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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0-7에 이어) "야아, 씨도 먹히지 않을 소리 하지도 마라. 말한다고 들어주겠냐? 내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 그 깍쟁이 김 언니한텐 말도 꺼내지마. 구질구질하게 사정할 생각 말라고. 거절할 텐데 뭐 하러 쪽팔리게 그런 소릴 하냐?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내게 말하지. 다른 말은 잘도 조잘대더니만 입은 뒀다 어디다 쓰려고, 다물고 있었어?"

최가 언짢은 듯 통박을 주는데도 명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두 번이 아니고, 너무 미안해서 그랬을 것이다.

최는 스물여섯 살로 해남 출신이었다. 그래서인지 공원들은 유독 해남 인근의 섬사람들이 많았다. 안에서 직접 공원들을 관리하는 작업반장인 그는 해병대 출신이라고 했다. 통솔력이 뛰어났으며, 성실하고 인정도 많았지만 한번 성질이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비는 황소 같은 기질이 있었다.

그는 제품을 만드는 사출기에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손가락이 모자라도 그가 회사에서 중요하게 대접받았던 것은 다른 사람 몫의 두 배를 끄떡없이 해냈던 때문이었다. 공원들은 작업량이 얼마이고, 불량품을 얼마나 적게 만드느냐는 수준에 따라 대우가 달랐고, 그만큼 봉급도 차이가 났다. 그는 일을 똑 부러지게 하는 만큼 공원들에 대한 관리도 철저하게 했다. 여공들은 그를 오빠라고 부르며 따랐고, 남자들은 그를 형이라고 불렀는데 윤숙도 해남이 고향이고, 같은 최씨라고 그를 더 따랐다. 그런 윤숙이 손가락을 다친 게 마음이 상한 모양이었다. 최가 김언니를 깍쟁이라고 한 것도 자신과 다른 김 언니의 원칙주의가 마음에 안 들어 그랬을 것이다.

김 언니는 깍쟁이라는 말을 들을 만했다. 다 회사의 형편 때문이었다. 언니도 회사의 사정이 원활했으면 공원들에게 야박하게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상을 졸업하고 바로 입사해서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는 언니도 공원들의 딱한 사정을 잘 알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언니는 회사가 고비라고 했다. 다달이 돌아오는 어음을 막기도 벅찬 형편이라 제때에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 주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걱정했다. 사장의 집과 회사의 건물까지 몽땅 담보로 들어가 언제 부도가 날지 아슬아슬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공원들에게까지 그런 이야기를 말해 줄 필요는 없다며 내게도 입단속을 했다. 회사가 술렁거리면 기술자들이 다 빠져나가 그나마 사정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고집이 센 김 언니에게 자존심 강한 오 언니가 윤숙을 위해 부탁을 해 주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이나 시원하게 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최 반장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꼭 깡패 같아. 눈빛만 봐도 섬뜩하다니까. 병실에서도 그 태도가 뭐니? 사람 망신 주자는 것도 아니고."

면회를 끝내고 나오며 투덜대는 오 언니에게 나는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도 좋고, 괜찮은 모양이던데요. 공원들도 최 반장 말을 잘 들어요, 다들 잘 따르기도 하고요"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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