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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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4
  • 김선옥
  • 승인 2023.09.15 05:59
  • 기사수정 2023-09-15 0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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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0-3에 이어)그들은 누군가에게 신세를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그때, 거기에 부담 없는 내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비교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삼대독자 외아들에 청춘과부의 며느리가 된 어머니는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어릴 적부터 나를 붙잡고 타는 속내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듣는 것이 버릇이 되어 사람들이 속에 쌓여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들어주었다. 가슴의 응어리들을 밖으로 뱉어 내면 후련해지는 법이다. 그네들도 아마 그런 이유로 나를 찾아왔을 것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내가 그런 면에서 편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공원들은 나이가 들어 대부분 내겐 언니처럼 보였다. 하지만 찾아왔던 그네들 중, 나보다 서너 살이나 더 들어 보이는 여공들도 알고 보면 이제 겨우 열여섯이거나 열일곱이었다. 그들은 학교나 다닐 어린 나이에 돈벌이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사정이 절박했고, 그들이 그때까지 살았던 삶은 나이에 비해 복잡하고도 험난했다. 고달픈 인생이 아마도 나이보다 겉늙어 보이게 하여, 내겐 그들이 언니 같은 기분이 들게 했는지도 몰랐다.

그들 모두는 가난 때문에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왔다. 그리고 일을 따라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철새들이나 진배없었다. 공장이 망해서 문을 닫으면 그들은 어디론가 또 흘러가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 그들은 쉴 틈이 없었다. 일이 없더라도 하루라도 일을 찾아 헤매지 않으면 배를 곯거나 머물 곳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을 때는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그들의 눈엔 배를 곯는 서러움과 밑바닥 생활의 힘든 고통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간간 한숨을 섞어서 들려주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눈곱만큼도 도움 주지 못하는 내가 늘 미안했다. 가슴 찡한 아픈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는 무거운 짐 하나를 넘겨받은 기분이 들었다.

내 월급도 적었으나, 그들의 월급은 더 형편 없었다. 사장은 비교적 양심적인 사람으로 직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했지만 대기업에 밀린 작은 회사는 판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판매도 부진하여 힘든 사정이었다.어려운 탓에 직원들의 월급을 넉넉하게 줄 수 없었으므로 공원들은 기본급 외에 수당을 지급받았음에도 많은 돈은 아니었다. 월급의 대부분을 고향으로 송금한 공원들은 모자란 나머지 용돈을 가지고 한 달을 겨우겨우 버티었다. 옷을 사거나, 화장품을 살 만한 여유가 없어 그들은 거의 꾀죄죄한 차림이었고, 몸에는 항상 궁색한 티가 배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기숙사를 제공하여 숙식을 해결해주는 것도 어려운 사정에 처한 회사로선 상당한 배려였다. 공원들도 그걸 알고 있었고, 일하는 양에 따라 수령액이 달라서인지 모두들 열심히일했다.

여름의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기온이 급격히 상승한데다 비가 내리지 않아 살갗이 끈적거렸다. 갑작스레 몰려온 무더위에 바람도 없어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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