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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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플라스틱 제조공장 10-2
  • 김선옥
  • 승인 2023.09.13 07:45
  • 기사수정 2023-09-13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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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0-1에 이어) 관리과는 물건과 사람들을 동시에 관리하는 곳이었다.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들과 그 물건을 만드는 공장의 직원들이 관리의 대상이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나는 관리대장에 있는 이름들을 모조리 외워야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관리대장은 두 개가 있었고, 1과 2로 나뉘어 있었다. 관리대장 1엔 물건들의 이름을, 2엔 공원들의 이름을 적어 두고 있었다. 처음 장부를 펼쳐 보았을 때, 나는 사람보다 물건을 우선 취급하는 듯해 기분이 묘했다.

2에 있는 이름들을 외우기는 비교적 쉬웠다. 익숙한 이름들이고,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 내겐 흥미로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의 앞머리에 쓴 '철수야' 같은 이름을 외우는 일은 별다른 장애가 아니었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서 왔고, 여기서 근무하는 이유들을 나는 모조리 알아낼 수 있었다. 개인의 특징이나 특별한 버릇, 목소리 등을 생각하며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이름들을 전부 기억하게 되었다.

1의 품목을 외우는 일은 꽤 힘이 들었다. 나는 숫자에 약한 편이었는데 품목들에는 모두 숫자가 써져 있었다. 105, 202 식으로 명명된 플라스틱 통의 종류만도 엄청나게 많았는데 그 숫자들에는 또 들어오고 나간 숫자가 혹처럼 덧붙여 있었다. 숫자는 날마다 바뀌었다. 105 몇 개입고, 몇 개 출고, 몇 개 잔고, 이런 식이었다. 셈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특히 애를 먹었다.

관리과 사무실은 정문의 바로 곁에 위치해서 사람이나 물건의 입출을 확인했다. 이른 아침이면 운전기사들은 전날에 만든 플라스틱 제품을 트럭에 가득 싣고, 공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트럭에 적재된 거대한 제품을 끌고 나가는 기사들이 언젠가는 제품에 짓눌려 찌그러들까 봐 걱정이었다. 차들이 꼬리를 물고 나갈 때마다 나는 기사들보다도 제품의 안전을 더 걱정하며,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기를 빌었다. 제품의 무사를 기원하는 내가 비정했지만 문제가 생기면 내 일이 복잡해졌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총무부나 영업부 부서들은 공장이 있는 이층에 사무실이 있었다. 그곳에선 기사들이 필요한 화급한 일이 있는지 수시로 기사들을 찾았다. 기사들은 관리과에 들러 어디로 물건을 실어 간다는 기록을 남겼고, 돌아온 시간도 기록했으므로 나는 그들이 언제 나가는지, 언제 들어오는지를 대강 알고 있었다. 이층의 사무실이나 어디서 기사를 찾는 전화나 인터폰이 울리면 나는 기록에 의지하여 알려 주면서도 잠깐씩 쉬는 기사들을 찾아내는 사냥개 노릇을 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 미안했다.

"미스 한, 퇴근하고 나랑 커피 마시러 갑시다."

청주 출신의 김 기사가 제품의 입출고를 맞추느라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내게 말을 건넸다. 그는 네 명의 트럭 운전사 중의 한 명이었다. 나씨 아저씨라도 있으면 조언을 구했을 텐데, 사무실에는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럴 땐 네, 라고 해야 할지, 아니오, 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여고를 갓 졸업한 열아홉이었고, 남자랑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왜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동안 그를 살펴보았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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