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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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11
  • 김선옥
  • 승인 2023.05.06 06:10
  • 기사수정 2023-05-06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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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10에 이어)해열은 그녀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녀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해열이 나가고 나자 집안은 다른 날처럼 정적에 잠겨 버렸다. 갑작스러운 고요가 일순간에 텅 빈 집안에 차고 넘쳤다.

그녀는 이런 시간들이 못 견디게 싫었다. 먼지 하나가 떨어져도 금방 알아챌 것 같은 천지의 침묵은 그녀를 언제나 혼란 속으로 이끌었다. 그럴 때면 발작적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더 이상 닦을 게 없는 가구들, 그녀와 함께 되돌아온 장롱과 화장대까지 윤이 날 정도로 문질렀다. 가슴속에 산더미처럼 쌓인 응어리들을 쓸어내고 닦아내듯 강박적으로 몇 번씩 닦았다.

갈색의 칙칙했던 티크 가구들은 어느새 유리알처럼 반짝거리지만 가슴에 쌓여 있는 찌꺼기 하나도 청소 따위로는 어찌하지 못한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두려움에 젖는다. 숨이 멎는 것 같은 고통을 수반하는 두려움, 언젠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그녀를 삼켜 버릴 것이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두려움일까.

그녀는 화장대의 거울 앞에 앉아 환부를 살피는 수술실의 집도 의사처럼 심장을 조여 오는 근원을 파헤치려고 날카롭게 눈을 치켜뜬다. 아무리 노려봐도 통 알 수가 없다. 눈가에 잔주름이 자리 잡기 시작하는 스물아홉 살 인생,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떨게 하는지 그녀는 알 수가 없다.

그녀는 거울 안에 들어 있는 스스로를 무심히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그곳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에 휩쓸려 그녀는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허우적거릴수록 더 많은 의문의 소용돌이는 그녀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가 그만 익사당할 것 같다.

딩동, 초인종 소리가 그녀를 구원했다. 보이지 않는 손에서 도망치듯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누구세요?"

벨을 누른 건 외삼촌이었다. 외삼촌은 등 뒤로 눈부시게 햇빛을 받고 있어서 얼굴이 그늘져 보였다. 오랜 감금과 격리가 빚어 낸 쓸쓸함이 배인 특유의 표정이 잠시 떠올랐다. 슬픔이 아릿하게 보이는 시선으로 외삼촌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가움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섬뜩함이느껴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오소소 돋는 소름을 털어내듯 입가에 걸친 그녀의 미소는 어색했다.

"어디, 다녀오세요?"

"일이 좀 있어서.”

“식사 차려드릴게요."

"괜찮아. 아침은 먹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는 등 뒤로 단절의 칼끝이 보였다. 부담을 줄여 준 대화는 차라리 다행스러웠지만 왠지 씁쓸했다. 그녀는 천천히 방으로 되돌아와 하다만 장롱 닦는 일을 반복했다.(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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