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역전의 싸움닭’ 조계현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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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역전의 싸움닭’ 조계현 ③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11.13 08:12
  • 기사수정 2022-01-14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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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남중 2학년 때 노히트노런 기록

1970년대 초중학교 야구대회 개막식./사진=군산야구 100년사
1970년대 초중학교 야구대회 개막식./사진=군산야구 100년사

초등학교 시절부터 파워 넘치는 투구로 주변을 놀라게 했던 조계현은 1978년 장호익, 고장량, 한경수 등과 함께 군산남중에 진학한다.

중학교에서도 장호익과 호흡을 맞추면서 전국규모 대회에서 두 차례 결승에 진출한다.

투수라면 누구나 욕심내는 노히트노런도 달성한다.

그럼에도 우승기는 한 번도 거머쥐지 못한다.

중학생 조계현의 롤 모델은 고교 시절부터 초특급 투수로 찬사를 받으며 연세대 마운드를 굳건히 지키는 최동원(2011년 타계). 소년 조계현은 각종 타이틀을 거머쥐고 당대 최고 투수로 군림하는 최동원을 보며 꿈을 키운다.

어떤 역경과 고난이 닥쳐도 열심히 노력해서 연세대에 진학하고, 국가대표 선수도 되어 야구장을 호령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1979년 5월 30일, 충북 청주에서 제8회 전국소년체육대회가 열렸다. 군산남중 2학년 때였다.

전북 대표로 참가, 개막전 선발로 나서 강원 대표 타자들을 압도하며 7회 2사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갔다.

한 명을 볼넷으로 내보냈으나 곧장 견제구로 잡아낸다. 경기 결과는 전북이 1-0 승리.

그는 대회를 앞두고 개장한 청주구장 첫 번째 승리투수이자 노히트노런 기록 보유자가 된다.

1980년 6월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제35회 청룡기쟁탈 중학부 결승전에서 군산남중은 충남중에 1-3으로 석패, 준우승에 머문다.

이 대회에서 조계현은 감투상을 장호익은 타격상을 받는다.

그해 8월 서울에서 열린 제23회 문교부장관기 중학 야구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한다. 조계현·장호익 배터리는 이 대회에서도 감투상과 타격상을 각각 받는다.

 

군산상고 1학년 때 스타로 떠올라

조계현은 군산상고에 입학하는 1981년(야구부 14기)부터 스타 반열에 오른다. 야구전문가들이 가장 좋은 구질을 보유한 유망주로 평가한 것.

그해 5월 대통령배 대회와 7월 미국에서 열린 제1회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선발 및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우승을 견인한다.

9월에 열린 한·일 친선 고교야구대회에서도 완숙한 투구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군산상고 선수들을 환영하는 군산 시민들./사진=군산야구 100년사
군산상고 선수들을 환영하는 군산 시민들./사진=군산야구 100년사

조계현·장호익 배터리가 이끄는 군산상고 야구부(감독 백기성)는 유난히 무덥고 가물었던 1981년 5월 15일 대망의 대통령배 정상을 탈환한다.

특히 1년생으로 에이스 자리를 굳힌 조계현은 장충고와 2회전을 제외한 4게임에 위기 때마다 구원 투수로 나와 방어율 1.29의 놀라운 투구로 우승을 이끈다.

제15회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전이 열리는 그날 오후 3시, 서울운동장 야구장은 스탠드를 꽉 메운 3만 5000여 관중과 응원 열기가 더해져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응원 함성이 하늘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결전(군산상고-북일고)의 막이 올랐다.

그리고 전국의 고교 야구팬과 많은 군산 시민이 라디오와 TV 앞에서 숨을 죽였다.

군산상고의 선공. 1회 초 톱타자 김평호와 4번 임동구가 포볼을 골라 1사 후 주자 1, 3루 기회를 잡는다. 이때 5번 조계현이 북일 선발 안성수의 두 번째 공을 휘어 치는 순간, ‘딱’ 소리와 함께 우익수 오른쪽으로 빠지는 통렬한 주자 일소 2루타가 되어 2점을 선취한다.

1회 말 군산상고 선발 강대호 투수가 2루타를 맞고 실점 위기에 놓이자 그날의 히어로 조계현이 마운드에 올라 나머지 타자들을 3진으로 가볍게 처리한다.

다시 2회 초. 연속 포볼과 야수선택으로 만루를 만들어 스퀴즈로 1점을 뽑고, 2번 고장량의 적시타로 2점을 추가 5-0으로 대세를 굳히자 군산 시내는 흥분의 도가니.

그에 화답하듯 조계현은 완벽한 투구로 2, 3. 4. 5회를 범타로 처리한다.

공을 던질 때마다 터지던 환호성이 잦아든 것은 2점을 내준 6회 이후.

사람들은 TV 앞에서 가슴을 조였다.

드디어 7회 말. 공의 위력이 떨어져 데드볼을 내주고, 장호익마저 파울볼로 팔을 다쳐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강한 배짱의 조계현은 빠른 직구로 승부수를 던지며 1점만을 허용한다. 쫓고 쫓기는 공방전. 모두가 숨을 죽였다. 8회 말 무실점.

9회 말 조계현의 마지막 직구가 범타로 끝났을 때 땀으로 범벅된 선수들은 얼싸안았고, 군산 시민들의 함성은 높이 솟은 월명공원 수시탑 주위를 맴돌았다.

군산상고 우승(5-3)이 확정되자 다방에서 TV 중계방송을 시청하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술집으로 향했다.

초여름 밤, 아름다운 항구도시 군산의 밤은 야구 이야기와 술에 흠뻑 젖은 채 깊어갔다.

다음 날 아침, 도심지 거리에는 색색의 환영 현수막이 하늘을 물들였고, 많은 시민과 조계현·장호익 배터리를 꿈꾸는 야구 꿈나무들이 역전의 명수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조계현 감독은 “50년 야구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 깊었던 경기(대회)를 몇 개 기억하는데, 군산상고 1학년 때 대통령배 우승을 첫 번째로 꼽는다”며 “가슴 뭉클한 환영을 받아서 그런지 군산 시내 카퍼레이드를 생각할 때마다 전율을 일으킨다”고 덧붙인다.

이어 그는 시원한 음료수를 기자에게 권하며 ‘한탄’ 한마디를 남겼다.

“세월 참 빠릅니다."

"초등학교 때 소사 아저씨가 깎아준 야구방망이에 글러브를 끼워 메고 서울로 시합 나가고, 고무신 신고 냇가로 물고기 잡으러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들이 장가들게 생겼으니, 차~암나, 서글퍼요 서글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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