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역전의 싸움닭’ 조계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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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역전의 싸움닭’ 조계현 ①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11.06 07:59
  • 기사수정 2022-01-14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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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현 LG트윈스 2군 감독 시절/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조계현 LG트윈스 2군 감독 시절/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1981년 당시 1년생 조계현 투수를 앞세워 제15회 대통령배 정상에 오르고, 이듬해 전국규모대회 2관왕을 차지하자 군산은 ‘조계현·장호익 신드롬’에 빠진다.

군산만이 아니었다.

TV에서는 역전의 명수 모티브로 개그 프로가 방영되고, 골목동네 야구 꿈나무들은 서로 조계현·장호익 배터리를 하려고 신경전을 벌였다.

군산상고 유니폼 차림의 조계현 얼굴이 각종 스포츠신문과 월간지 표지를 장식하면서 어느 여중학교에서는 가짜 ‘조계현 사촌 동생’이 등장해 소동을 빚기도 하였다.

 

"입이 있어도 사투리조차 함부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암울했던 시절"

"당시 군산은 군사정권의 편향적인 개발정책으로 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오죽했으면 군산상고 응원 구호로 ‘우리의 소원은 군산 신외항 개발!’을 외쳤을까."

"그 시기 조계현 투수가 구원자처럼 나타났던 것, 시민들은 그의 파워 넘치는 강속구가 뿌려질 때마다 환호하였고, 희열을 느꼈으며, 슬퍼하고 분노했다." - 조종안 기자의 생각

 

조계현의 찬란한 기록들

야구 명문 군산상고와 연세대를 졸업했다.

88올림픽 대표와 농협을 거쳐 해태 타이거즈(1989~1997), 삼성 라이온즈(1998~1999), 두산 베어스(2000~2001) 등에서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2001년 현역에서 은퇴하고 KBS 해설위원을 거쳐 KIA 타이거즈 투수코치(2002~2003), 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2005~2009), 두산 베어스 투수코치(2009~2011)를 지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임되어 남자단체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이끌었다.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타격코치였던 김기태 LG트윈스 감독 요청으로 2011년 10월 수석코치로 영입됐다. 지난 4월 23일 김기태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팀을 감독 대행으로 이끌다가 5월 11일 양상문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2군 감독으로 보직 이동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상은 조계현(51) LG 트윈스 2군 감독의 스펙이다.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조계현.

물러설 줄 모르는 투지와 승부 근성을 지닌, 그러면서도 정이 많은 의리의 사나이로 알려진 그는 선수 시절 ‘싸움닭’이란 별명을 얻으며 명성을 날렸다.

국내 변화구의 일인자로 타자를 요리조리 꼬이는 능력과 끈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눈 감고 던질 수 있는 변화구만 10가지가 넘는다고 해서 팔색조, 변화구의 마술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장난삼아 ‘조 닭’이라 부르는 팬도 있었다.

연세대 4학년이던 1987년, 춘계대학야구 리그 11경기에 모두 등판하여 8승 1패 2세이브를 달성한다. 이는 대학야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며 갈수록 경기 수가 줄어 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994년 4월 28일 광주구장에서 쌍방울 김원형 투수와 15회까지 완투 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3-3 무승부. 투구 수는 조계현 190개, 김원형 212개로 팔이 빠질 정도로 던졌다. 이는 프로야구 마지막 15회 완투 기록으로, 100개 한계 투구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요즘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프로야구 통산 15회 완투는 모두 10회. 그중 해태 선수가 무려 다섯 번을 차지한다. 왜 해태가 강팀이고 투지와 근성의 팀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수치이기도 하다.

프로통산(1989~2001) 320경기에 등판 126승 92패 17세이브 방어율 3.17을 지켰다. 완투승 64회, 완봉승 19회, 탈삼진 1100(1923 1/3이닝)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해태 우승에 5회(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이바지했으며, 두산 베어스 우승(2001) 멤버이기도 하다.

1993년(17승), 1994년(18승) 연속 다승왕 차지했다.

1995년에는 방어율 1.71을 기록, 최소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다. 통산 완봉승 4위, 통산 다승 6위를 마크한다.

어느 강타자를 만나도 물러설 줄 몰랐던 ‘싸움닭’다운 찬란한 기록들이다.

 

기자와 인터뷰하는 조계현 감독(2014년 6월)./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기자와 인터뷰하는 조계현 감독(2014년 6월)./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지난 6월 중순 LG트윈스 2군 선수들 훈련장이 있는 경기도 구리시 ‘LG 챔피언스 파크’를 찾았다. 조계현 2군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와의 만남은 지난 1월에 이어 두 번째.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시원한 느티나무 그늘에 마주앉았다.

김기태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으며 조계현 수석코치에게 ‘남아서 감독 대행을 해주시라’고 부탁했다.

구단에서도 ‘감독 대행’을 제안했다. 그럼에도 고사했단다. 김 전 감독과 의리 때문이었다. 김 감독을 따라 팀을 떠나려 했다가 2군 감독을 맡기까지 심경이 복잡했을 터.

요즘 근황을 묻자 담임선생을 어려워하는 초등학생처럼 수줍어하며 “지낼만합니다!”라며 피식 웃는다.

그의 천진한 표정에서 시골 소년의 순박함과 강한 카리스마가 동시에 느껴졌다.

(계속)

※ 등장인물 나이와 소속은 2014년 6월 기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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