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아내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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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아내 9-2
  • 김선옥
  • 승인 2022.07.15 07:30
  • 기사수정 2022-10-05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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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군산코리아커피아카데미 제공
사진=군산코리아커피아카데미 제공

(…①에 이어)

"너, 정해원이지?"

그는 처음부터 그렇게 물었다. 누가 내 옛 이름으로 나를 찾는 걸까.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예전의 내 이름은 바다의 근원이란 뜻을 가진 특별한 이름이다. 나는 아버지가 지어 주신 아름다운 이름을 사랑했지만 결혼 이후 이름이 불려질 기회는 적었다.

이름이 너무 강하다고 시집에서는 내 이름이 거명되는 자체를 싫어했다. 다행히 내겐 아이가 있었다. 남편의 족보로 항렬을 따른 진수란 이름의 아이, 그 아이 덕분에 나는 한동안 시집이나 인근에서 줄곧 진수의 엄마로 불리었다.

남편과 헤어져 산 이후에는 진수 엄마란 이름이 없어졌으므로 나는 혼자 살면서 해원이란 이름 대신에 은지란 가명을 사용했다. 나를 만난 낯선 모두에게 나는 새로운 이름, 은지로 통했다.

그는 은지가 아닌 해원이를 찾았다. 해원이를 찾는 그가 누구든 나는 반가웠다. "누구신데요? 해원이 맞습니다만."

"야아. 정말 반갑다. 중학교 동창, 윤시영이야 너 찾느라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좀 만나자"

그는 대뜸 만나자고 말했다. 연락을 받고,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를 만나러 나갔다. 다른 남자들을 만날 때처럼 만나서 어떻게 하겠다거나 어쩌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없었다. 동창이라는 말에 마음의 빗장을 풀었는지도 모르지만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장담한다. 나가면서도 나는 그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지 그것만 걱정했던 것 같다.

걱정은 기우였다.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갈색 계열의 싱글을 차려입은 그는 호텔의 커피숍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만나기로 한 동창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았다. 실내는 커피 향이 은은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의 표정은 이상하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금방 면도하고 나온 듯 턱이 파르스름했다. 긴장한 그가 나를 발견하자 깨끗한 턱이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순간, 그가 유지하고 있던 균형이 흐트러졌다. 놀란 토끼처럼 불안을 보이는 짓은 엉성했다. 나이를 먹어서 틀 잡힌 몸집을 하고 있는 그가 생김새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 역시 균형이 잡힌 세상에서는 절대로 어울리게 놀 수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다른 남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에게도 아주 환하게 웃었다.

"나를 알아보는구나. 정말 반갑다. 우리가 얼마 만이지?"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가 얼굴을 붉히며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속으로 지난 세월을 가늠했지만 계산이 느려서 확실한 숫자를 쉽게 입밖에 내지 못했다. 거의 이십 년이 넘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것만 간신히 알 수 있었다.

“글쎄, 중학교 졸업하고 처음이니까. 이십 년은 훨씬 넘었겠고."

"그랬구나. 나는 너를 몇 번 봤어. 그래서인지 그렇게 오랜 것 같지는 않아. 사실 너는 내 첫사랑이어서 내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거든."

그가 말끝을 흐렸다. 나를 보고도 모른 척했다는 사실보다도 내가 첫사랑이라는 고백에 관심이 더 갔다.

"섭섭하네. 첫사랑이라면서 아는 체라도 좀 하지."

“대학교에 다닐 때였는걸. 어떤 남자랑 같이 있어서 아는 체하기가 뭣하더라. 그래서 보고도 여러 번 그냥 지나쳤어."

어떤 남자라면 남편이었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서 같이 어울려 다녔던 남자는 남편뿐이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우리는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그가 했던 많은 이야기 중에서 나는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뇌에 저장했다. 내가 첫사랑이라는 것, 그는 나의 결혼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실패한 사실을 알았다는 것, 잊으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는 내용이다.

그는 나를 수소문하느라고 꽤 힘들었다는 말과 함께 돈이 많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아내가 번 돈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를 도울 수 있다는 속내도 흘렸다. 얼마든지 도와줄 여건이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도움을 청하라는 그 비슷한 말을 내비쳤다. 나를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외에도 많은 것을 이야기했지만 기억력에 문제가 있어 일일이 기억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았다면 그는 첫사랑인 나를 잊고 살 수 있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그가 내게 접근할 생각을 가졌거나 내가 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은 확실하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 소설은 매주 금요일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수상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수상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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