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아내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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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아내④
  • 김선옥
  • 승인 2022.07.29 07:51
  • 기사수정 2022-07-29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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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에 이어) 남편을 떠난 후에 나는 정길이라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났다.

부유한 정길의 아버지는 빈둥거리던 그에게 자그마한 레스토랑을 경영하도록 마련해 주었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그가 내게 결혼을 제의했고, 남편과 헤어진 허전함은 정길의 위로를 용납했으므로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호적을 정리하러 만났을 때, 남편은 길길이 뛰며 화를 냈다.

“그렇게는 못해 주지. 내가 두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네까짓 게 어디서 감히 행복을 들먹여? 내가 병신이냐. 헤헤거리며 네 꼴을 보게. 웃기지 마라. 다른 놈하고 살게 두느니 너를 죽이는 게 차라리 낫지. 안되는 일은 절대로 안 돼"

이혼해 줄 수 없다고 뻗는 남편의 심사는 내 불행한 삶을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렸으면 하는 오기가 남편의 시선에서 일렁였다.

정길의 레스토랑에서 온갖 행패를 부린 남편 덕분에 내 두번째의 결혼은 물 건너갔다. 감당하기 힘든 패악으로 고개를 내두른 정길과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났다. 버림을 받은 것에 나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마음의 위로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길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다. 생활의 방편으로 결혼하려 했을 뿐이어서 이별의 절차는 수월했다.

정길과의 일이 있고, 나는 법정에 남편과의 이혼을 신청했지만 기각되었다. 연락 없이 가정을 떠난 내가 먼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이 내 곁에 없어도 남편의 이름 곁에는 여전히 내 이름 석 자, 정해원이 쓰여 있다. 감정은 깨끗이 정리된 상태지만 내 호적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고 남편의 곁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후로도 나는 많은 남자들을 만났다. 나는 참 쉽게 만나고, 간단하게 헤어졌다. 내가 만난 남자들 중에는 유부남도 있고, 이혼한 남자와 홀아비, 총각도 있다. 나보다 세상을 훨씬 많이 산 아버지 나이의 노인이 있는가 하면 막냇동생 나이의 어린 남자도 있다.

통계로 따지자면 불륜으로 일컬어지는 아내 있는 남자들이 대부분이나 그들과도 오래 관계를 끌어가지 않았으므로 들키는 위험은 별로 없었다.

내가 제일 길게 만났던 사람은 아내와 헤어지기 직전까지 갔던 한심한 남자였다.

작은 무역업을 하던 그는 내게 미쳐서 사업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사업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고 그를 정리하느라 무려 6개월을 소모했다. 수입은 별로 없고, 그를 떼어 내는데 심하게 머리를 써야 했던 그 기간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로 인해 골치를 앓았던 나는 다음부터 남자를 만나는 일에 신중을 기했다. 무모한 남자를 만나지 않으려면 안목을 키워 잘 골라야 했다.

나는 실수를 교훈으로 한두 달이 지나면 즉시 헤어졌다. 만날 때부터 그들에게서 금전적인 도움을 받지만 도를 넘기기 전에 그만두었다.

나와 만났다 헤어진 남자들은 다시 나를 만나게 되더라도 반가워한다.

그들은 언제나 내게 사랑의 아픈 상처만 남기고 떠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헤어진 사랑의 상대로 남기 위해 노력했고, 그들은 대부분 나를 발로 차는데 성공했다.

안타깝고,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대로 나라는 존재가 자리한다는 것은 내가 꽃뱀으로 살아남은 비결이다.

만나는 사람의 종류만큼이나 내가 갖는 직업의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내 진짜 직업은 꽃뱀이다.

남자들은 아무도 내게서 꽃뱀의 냄새를 맡지 못하고, 표면화된 직업인으로 나를 믿는다. 나는 외면적으로 여러 직업을 명함에 새기며 접근하지만 명함으로 내민 직업에서 수익을 올린 적이 없다. 내 수익의 대부분은 남자들의 주머니에서 채워진다.

“나는 힘들게 살았어. 세월은 언제나 내 편이 아니었지. 어머니는 내게 팔자치레 한다고 하셔. 전생에 지은 업보가 많아 갚느라고 그렇다는 거야." 나는 말한다.

지나간 이야기를 한숨처럼 뱉어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대꾸가 없다.

“나는 팔자를 고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닥치는 대로 살았던 거 같아. 인생은 스스로 극복한다는 말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지.”

만나지 말자는 말을 단숨에 내뱉지 못하고 뜸을 들이는 내 버릇은 여전하다.

"이제야 말하지만 너를 만나서 참 편안했어 사는 것도 그랬고, 이미 내 편에 설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나는 ‘이미’라는 단어로 관계를 규정한다. 현실의 그는 내 곁에 있지만 머릿속에 있는 그는 이미 정리되어진 남자다.

"네 편에 서지 못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가 놀란 어투로 덤비듯 묻는다. 그는 내 말의 행간에서 올 것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에 반발하는 눈치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 소설은 매주 금요일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수상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수상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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